
KOMOREBI: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이 영화의 호평을 이미 여러 번 들었고,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찬사가 연이어졌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상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나도 그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다가 이 영화가 보였을 때 플레이 버튼을 누른 건 나로선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의외였다고 해야 할까. 내겐 이 영화가 일상의 찬사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게 보인 건 아름다움보다는 외로움이 컸고, 아름다움도 외로움도 아닌 그 둘을 초월한 그 무엇이었다. 외로움을 겪어내지 못한 아름다움은 공허하며,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한 외로움은 처절하기 마련인데, 내겐 이 영화의 메시지가..

Embrace"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영화 ‘Arrival’ 끝부분, 주인공 루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저 문장을 말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결연한 의지를 느꼈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을 만큼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Embrace’라는 단어의 다른 측면을 알게 된 경이로운 순간이자 사랑에 푹 빠진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끌어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미래를 끌어안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하는 과거가 있으며, 자신의 못난 자아..

인정과 사랑: 상투적인, 그러나 언제나 옳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다시 보고.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겉모습이 바뀐다. 그래도 우진은 우진이다. 속은 같다. 이수를 향한 마음도 같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진은 그녀에게 점점 익숙해져간다. 그러나 이수는 입장이 다르다. 이수는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진이 매일 낯설다. 비록 겉모습은 달라도 우진이 우진인 줄은 알지만, 매일 다른 모습에 익숙해지기에는 하루가 턱없이 모자라다. 그런 그와 함께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사랑해도 주위 사람들의 오해의 시선이 두렵다. 벌써부터 말이 들린다.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결혼을 생각하니 누가 감히 이런 말 못할 상황을 이해해줄까 걱정이 앞선다. 신..
‘소림축구’에서 엿본 정의. 아무래도 ‘소림축구’의 진미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태극권 골키퍼의 등장과 활약이다. 이 장면은 볼 때마다 진한 감동을 준다.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어제밤도 이 장면을 보며 난 눈물을 흘렸다. 축구계에서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손아귀에 쥐고 있는 악당 감독의 권모술수 때문에 소림축구팀은 심한 부상을 당해서 결국 선수 미달이란 명목하에 실격처리될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태극권을 이용하여 만두를 빚는 ‘아매’라는 여인이 골키퍼를 하겠다고 갑자기 나선다. 이미 상대편의 약물 반칙으로 초인적인 힘을 얻은 선수의 킥에 골키퍼 두 명이 나가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들 다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믿어달라고 했고 꼭 돕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진정성 있는 고백과 선포..
알아챔.-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민간인들의 작은 배들이 고립된 군인들을 구하러 오는 장면도 감동적이었지만, 간신히 구조되어 열차에서 잠이 든 후 깨어났을 때 군인들을 감싸고 있던 그 햇살이 내겐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욱하며 눈물을 흘릴 뻔했다. 영화 속에서 처음 등장하는 햇살이었다. 따뜻한 햇살,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 그렇다. 그것은 평화였다. 이미 그들에겐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의미를 상실한 일이었다. 단 한 가지,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구원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인 타자의 은혜다. 고국에 발을 딛은 후 수고했다는 말을 들은 한 군인이 되물었다. 고작..
여유. 영화, "About Time (어바웃 타임)"을 보고, 연습은 없다. 우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과거의 관성은 우리의 오늘을 어제와 같이 옭아매려 하고, 미래를 향한 야무진 꿈은 우리로부터 오늘을 희생제물로 삼게 만든다. 인생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만남들로 이루어지는 새롭고 창조적인 조합들의 연속이다. 그 시공간과 많은 만남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와버린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생각보다 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밤, "About Time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를 봤다. 미국에 오고 나서는 영화와 많이 멀어졌기에 이런 영화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
분필이 쥐어진다. 내심 기다렸지만 뜻밖이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칠판에 쓰기 시작한다. 과감하고 거침없다. 그녀가 써내려 가는 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통쾌한 저항이다. 숨겨진 천재성의 표출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당당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평화롭게, 그녀는 그 순간 자유를 만끽한다. 날아 오른다. 수직상승의 기류를 타고 내로라하는 백인들의 경탄을 넘어선다. 인종차별은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나사 (NASA) 내부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흑인들은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반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대우는 받는다. 일상 생활 자체가 모욕이고 치욕이다. 일하는 공간, 먹는 공간, 볼 일 보는 공간, 심지어 커피 포트까지 모든 것이 구분, 아니 차별되어 있다. 차별을 하는 ..
첼로가 낮게 연주한다. 까맣다. 푸른 빛이 서서히 보이며 결이 드러난다. 천장이다. 퍼런 하늘이 보이고 곧이어 퍼런 호수가 보인다. 커다란 창이다. 하늘과 호수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방이다. 그러나 어둡고 슬프다. 첼로가 연주하는 건 슬픔이고, 푸른 빛 또한 슬픔이다. 검은 테두리 안에 갇힌 파란 슬픔. 푸른 눈을 가진 루이스는 말한다.I used to think this was the beginning of your story. Memory is a strange thing. It doesn’t work like I thought it did. We are so bound by time, by its order. 딸을 출산한 직후인 듯 아기가 보인다. 건네주는 아기를 받는 루이스에게선 경이로움이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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