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먼저 다가서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6. 21. 05:50

여덟번째과제: 자유글쓰기 (주제: 학창시절 친구) – 강효길.


먼저 다가서기.


어릴적 골목대장이었던 나는 같은 골목에 살던, 나이가 같거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 당시 우리가 '목장'이라고 불렀던 인근의 초원과 산으로 놀러가 잠자리와 메뚜기, 나비, 매미, 심지어 지금은 보기 힘든 하늘소와 사슴벌레를 잡으러 온종일 쏘다니곤 했다. 드넓고 탁 트인 풀밭을 맘껏 뛰어다녔으며, 지칠 때면 군데군데 있던, 가지가 풍성한 나무에 올라가 쉼을 얻거나, 근처 냇가에 가서 발을 풍덩 담그고 개구리와 가제를 잡으러 다녔다. 지금도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느 뜨거운 여름날, 귀가 찢어질듯 울어대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골목대장 기질은 학창시절에도 유효했다. 그러나 난 국민학교 5-6학년 때 나의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한때 한 골목을 휘어잡았던 그 조그만 골목대장은 모두를 위한 리더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보스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전보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던 것은. 이를테면, 난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1등이 아닌 2등을 하길 원했다. 그렇다고 겸손해진 건 결코 아니었다. 반장이 창피할 정도로 인정받는 부반장, 실력은 1등이지만 1등에게 멋지게 자리를 양보한 2등으로 비춰지길 원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 정치에 대한 눈을 조금씩 뜨기 시작했고, 거짓 겸손의 힘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친구 녀석이 하나 있다. 이름은 강효길. 벌써 30년 전이다. 효길이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책상을 함께 썼던 짝지로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에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으며 공부도 잘했다. 나름 나의 교만이 한 번 꺾이고 난 후라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효길이를 대할 땐 내 안에 있던, 군림하고 소유하려는 욕구가 사라졌었다. 그에겐 나의 세속적인 힘이 전혀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겸손했고 다른 사람을 품을 줄 알았으며 나서지 않는 대신 주위 사람의 신뢰를 얻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신뢰도 얻어냈다. 그를 통해 나는 나완 전혀 다른 힘의 존재를 처음으로 접하게된 것이었다. 


효길이에게 내가 존경과 더불어 존중하는 자세로 다가가자 그와 나는 금새 단짝이 되었다. 지금은 파워포인트 파일로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선생님께서 뭔가를 조사해서 발표해 오라고 하면 문방구에서 커다란 전지를 사서 그 위에 손으로 직접 ‘매직’이라고 불렀던 두꺼운 펜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발표 준비를 했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내 방이 따로 없었지만, 효길이는 우리보다 부자였고 자기 방도 따로 있었다. 그래서 발표를 준비하는 날이면 으례 방과 후 효길이 집으로 가 둘이서 놀기도 하며 발표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와 난 마음이 잘 맞았다. 발표는 언제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덕분에 평가 점수도 훌륭했다. 나에게는 그때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해서 훌륭한 점수를 받아본 경험이었고, 나의 제멋대로의 방식이 아닌 서로 돕고 존중해가는 방식으로 이뤄낸 소중한 기억이다. 


시골이라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중학교에 반은 달랐지만 같이 다녔으며, 같은 학교에서 소수만이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되는 시스템 (이른바 ‘뺑뺑이’) 하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효길이 아버지는 고기 도매업에 종사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에겐 처음으로 차를 타고 가야할 만큼 먼 거리에 위치했던 고등학교에 갈 때, 효길이 아버지께서 그가 몰고 다니시던 트럭으로 나와 효길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효길이에게 참 신세를 많이 졌다. 


결혼을 하고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효길이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포항으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이 부산에 계셨기에 부산에 내려갈 때 보면 되지 않겠냐고 내가 말했건만 그는 굳이 포항까지 찾아온다고 했고, 며칠 후 약속한 날짜에 진짜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항상 네가 먼저 다가왔었잖아. 처음에 친구가 되던 그때도 그랬고 지금까지 내가 한번도 너에게 먼저 연락하고 다가간 적이 없어서 좀 미안했어. 그래서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하고 찾아와봤어.” 


고마웠다. 그러나 내가 항상 그에게 먼저 다가갔다는 사실은 나로선 처음 깨닫게 되는 사실이었다. 나의 골목대장 캐릭터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얘기하고 친구가 되는 데에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효길이는 내가 먼저 다가와준 것이 고마웠던 것이다. 그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인지 나처럼 친구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을 마치 거느리듯 데리고 다니던 내가 그에게 다가오자 놀라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고마웠던 것이다. 우린 그날 많이 얘길 나누었다. 오랜 친구와의 회포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 당시만 해도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미국으로 나오기 전까지도 미혼이었는데, 지금은 이 녀석이 결혼이라도 했는지, 아직도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포항에 있던 내게 먼저 찾아왔듯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서는 그의 모습도 이젠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그나마 곧이곧대로 교만함의 끝까지 치닫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효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고마운 존재였구나. 미국에 온 뒤로 많은 관계들이 멀어졌지만, 효길이.. 오랜만에 보고싶네. 한국 가게 되면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해야지.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8.06.24
스타벅스  (0) 2018.06.23
OC 독서모임 - 향유  (4) 2018.06.12
햄버거  (0) 2018.06.10
연필  (0) 2018.06.0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