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매임의 열매: 자유함의 역설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6. 28. 14:59

매임의 열매: 자유함의 역설.


매일 때 얻는 자유함이 있다. 아니, 매여야지만 얻을 수 있는 자유함이 있다. 누군가는 포기로 인한 새로운 힘이 가져다 주는 유익함이라고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포기와 실패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어쨌거나 한 때 '매였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석학적인 차이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매커니즘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 난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팩트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성취를 목적으로 한 삶을 살다 보면 가족조차 제한거리로 여겨질 때가 있다. 가족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거해야만 하는 요소로까지 의미가 확장될 때도 있다. 난 그 동안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수없이 반복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며 또다시 가족을 희생시키고, 마약과도 같은 '노-오-력'이란 이름의 무한루프 속으로 제 발로 들어가 결국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엘리트들을 목격해왔다. 사실 현존하는, 소위 잘나간다는 성공자들의 이면에는 보통 가정의 무너짐과 잃어버린 일상이 공존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미를 일부러 드러내기 위한 성공자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인터뷰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비극이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나 엄마의 조작된 다정한 모습을 포착하여 사진 몇 장으로 담아 과대포장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끝내 그 성공자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차라리 이런 거라도 없었다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조작된 인터뷰와 뉴스는 성공자 스스로도 그것을 사실로 믿게 만들어버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비극을 동반한 불행은 탄탄대로의 길에서 가장 먼저 진화하는 법이다. 막힘이 없는 길에서 불행은 언제나 성공보다 한 발 빠르다.


뭔가를 성취하려는 욕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성취병에 걸린 인생은 잘못된 게 맞다. 게다가 가족까지 장애물로 여길 정도라면, 분명 그 사람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이다. 성취물을 손에 잔뜩 든 채 불행의 구렁텅이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 않는가. 불행 앞에서 손에 잔뜩 든 성취물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


당신은 어떤가? 쫓기는 삶에 지쳐있진 않은가? 가족과 일상의 상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진 않은가? 그들의 희생이 당연한가? (아니, 어쩌면 당신도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 신호를 알아챘다면, 거기로부터 빠져나올 용기는 있는가? 노오력의 무한루프에 계속 갇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부터 이미 켜져 있어 익숙한 배경 장식이 되어버린 내면세계의 적색 경고등에 따른 탈출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인가?


화려한 성공자들의 이면에 있는 가족과 일상의 상실이 불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면, 반대로 가족과 일상의 회복을 경험한 실패자의 삶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매일 때 얻는 자유함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매이기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연속으로 인해 매임을 당한다. 다시 말해, 결국에 매임을 당한 사람조차도 실은 매이지 않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출발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은 매이고 매이지 않고에 있다.


일반적으로 성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임의 기회는 종종 찾아온다. 그러나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Go냐 Stop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매임을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이는 어쩌면 성공을 포기하느냐, 계속 좇을 것이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매임을 받아들이고 반강제적으로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비로소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나도 실은 그 중에 하나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매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까? 매이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되어 있을까? 수만 번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남아있는 옛 모습의 잔재로 말미암아 100% 확실하게 망설임 없이 답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지금의 내 모습, 즉 매인 내 모습이 더 낫다고 믿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매인 게 아니라 뜻밖의 자유함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자유함은 내가 성공의 끝자락에서 찾고자 미뤄뒀던 (말이 좋아 미뤄둔 것이지 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가치일지도 모른다고. 가장 높아져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소중한 가치들을 오히려 낮아짐을 당한 이후에 발견하게 되었다고. 매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함을 얻고 '정상적인' 인간의 궤도로 들어온 것이라고.


가족과 일상이 내게 허락된 선물이자 내 힘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은혜라고 믿고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난 성취병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노오력의 무한루프에서 해방을 받았다.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던 피라미드 체제로부터 벗어났다. 실로 매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던 것이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족과 일상을 중시하는 삶의 계획들이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영향력을 행사했고 우상으로 존재했던 가치들이 바뀌어갔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까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없으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것들이 점점 없어도 되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내가 가진 기독교적인 신앙도 지경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져 감을 느낀다. 그야말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과정인 것이다. 난 이를 축복이라고 이젠 정의한다. 참 감사하다.


이 축복의 시작은 매임이었다. 바닥을 치는 것 같은 상황도 나의 고정된 옛 관점에서 해석할 때만 그랬다는 것을 이제 난 안다. 그것은 발판일 뿐이었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잡초가 뽑히는 것을 생명이 끝장나는 것으로 오인했음을 안다. 매임으로 시작된 나의 전환점은 자유함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젠 매임을 속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함의 씨앗이다. 그 매임은 나도 모르게 매여있었던 것을 해방시키는 예언자적인 계시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유함은 공짜가 아니다. 매이는 일이 유쾌하진 않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매임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예전과는 분명 다르리라 믿는다. 점점 눈이 깊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매임을 기뻐하며 자유함을 소망하며 기다림과 견딤을 받아들이는.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  (0) 2018.07.18
고독한 이방인  (0) 2018.07.18
가끔은  (0) 2018.06.28
  (0) 2018.06.24
스타벅스  (0) 2018.06.23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