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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아. 어쩜 좋아. 난 지금 사랑받고 있나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13. 08:14

‘아. 어쩜 좋아. 난 지금 사랑받고 있나봐!’

아내와 떨어진 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결혼 15년차이지만 아내와 떨어진 기간을 다 합치면 아마도 5년 정도는 족히 될 것이기에 한 침대 생활로 살을 부대끼며 함께 한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와서 3년 간 아내 없이 아들 녀석하고만 지낸 적이 있다. 다른 이유로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아내마저 곁에 없었기에 나는 더욱 더 아래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둘이 생활할 땐 심적으로는 가장 무겁고 지쳐 있었지만, 몸은 아마도 가장 부지런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의 부지런함과 사랑으로 메꾼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밤에 자기 전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까지 나는 한 아이의 아빠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크게 아프지도 않고 그 모든 걸 어쨌거나 해냈다. 돌이켜보면 정말 은혜다.

아들과 함께 했던 그 기간 동안 떨어져 있는 아내를 향한 내 마음엔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마음은 ‘나 대견하지?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별 부족함 없이 해내고 있어’ 라고 말하고 있었다. 혼자 외딴 곳에서 생활하는 아내의 상황도 다른 컨텍스트에서 힘들 게 분명했지만, 그때 내 마음은 아내조차 신경 쓸 겨를도 없을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7월 중순부터 마치 돌싱처럼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랬더니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은 결혼하기 이전,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애썼던 한 남자의 마음이 되어간다. 나에게서 실제적인 아빠의 정체성이 잠시지만 사라졌기 때문인지 아내를 생각하면 약 20년 전과 같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어떻게 하면 한 남자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까 혼자서 마음 설레며 궁리한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나면 난 또 다시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은 많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현실적인 삶의 무게는 언제나 이상을 가뿐히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마음을 기억하고 간직하고자 한다. 이 글도 그런 차원에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결혼식 때 선서했던 항목이 생각난다. 아내를 평생 사랑할 것에 크게 “예” 하고 답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 약속을 꼭 지킬 다짐을 이렇게 혼자서 다시 한다.

태어나 내가 상처를 주거나 나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 수가 많을까, 아니면 나에게서 사랑 받은 사람 수가 많을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생지기로 짝지어진 한 여자, 내 아내 만큼은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늘 느끼게 해주고 싶다. 너무나 로맨틱한 생각이라 마치 결혼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신혼부부와도 같은 생각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적어도 그건 아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하지만,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만나고 내년부터 다시 함께 살게 되면 그땐 가능한 한 아내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익혀서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남편, 좋은 남자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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