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층의 관성차등은 차별이 되기 쉽다. 독재자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지배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차등이라는 개념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 차등이라는 게 오로지 독재자의 주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독재자는 당연히 그것이 자기의 주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차등 제도로 인해 혜택을 받은 자들은 경쟁사회에서 선택받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다행으로 여긴 나머지 혜택 받지 못한 자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겸손은 그저 자기 역량을 낮추면서 자기가 선택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 정도에 그친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겸손을 표현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이렇게 차..
도스토옙스키와 헤세마흔이 다 되어 갈 무렵 다시 시작된 나의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헤세였다. 유리알 유희를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헤세 선집을 모두 읽었을 때 느꼈던 감격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후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 되었고, 헤세 다음으로 읽을 작가를 선별했었다. 그러다가 걸린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나는 그 당시 도스토옙스키가 헤세보다 더 어렵고 두꺼운 작품들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어떤 도전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대표작이라 부르는 5대 장편만이라도 먼저 읽어 보자고 다짐했었다. '죄와 벌'로 시작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5대 장편을 마쳤을 때 느꼈던 감격 또한 지금도 생생하다. 나..
포용과 방관과 상대주의 사이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방관자에 머무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회색분자, 양다리를 걸친 우유부단한 자의 이미지로도 비치는 그 사람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중간은 어디인가? 치우치지 않는다는 건 허상 혹은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치우치지 않고 중앙에 위치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모델인가?한 우물 안에 갇혀 바보처럼 행복하다가 어느 날 어떤 만남을 계기로 우물 밖의 세상을 알게 되고 자기의 안전지대였던 우물이 온 세상이 아니라 여러 우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우물 밖을 스스로 걸어 나올 때는 자칫 습관에 의해 살던 관..
초월자의 모습어떤 사상이나 이념 혹은 가치체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자의 모습은 어떨까? 누가 봐도 초월자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게 보일까?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초월자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울고 웃고 장난도 치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초월을 경험한 이후에 다시 얻은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제자리인 것 같지만 굴곡진 먼 길을 거치고 마침내 돌아온 자의 모습이 바로 초월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잃어본 자만이 아는 특권이라고 믿는 나는 초월자의 모..
운의 두 경로: 만남과 타이밍얼마 전 포스팅에서 인생은 팔 할 이상이 운으로 이뤄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운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이번 글은 그 운의 주요 경로를 내 경험에 비춰 두 가지로 얘기해 볼까 한다. 하나는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타이밍이다.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사람에게서 온다고 믿는다. 반대로 가장 큰 저주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본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큰 축복도 가장 큰 저주도 받게 된다.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만남의 대부분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날 도둑 같이 찾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운이라 할 수 있다. 혹시 만남이 운이라는 표현이 탐탁지 않은 분들을 위해 예를 세 가지만 들어보겠다. 하나는 부모와의 만남이다. 우리에겐 부..

Embrace"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영화 ‘Arrival’ 끝부분, 주인공 루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저 문장을 말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결연한 의지를 느꼈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을 만큼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Embrace’라는 단어의 다른 측면을 알게 된 경이로운 순간이자 사랑에 푹 빠진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끌어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미래를 끌어안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하는 과거가 있으며, 자신의 못난 자아..
Novel Finding 대학원을 2003년에 시작했으니 생물학 연구를 주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기초과학자이자 실험생물학자다. 그러므로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고 그것을 이론만이 아니라 실험으로 규명하는 일이 나의 본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내가 발견한 사실 중 해비급으로 보이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학원생 시절에, 다른 하나는 최근에 이루어졌다. 오늘도 그 두 번째 발견에 의미심장한 가지를 하나 더 보탤 수 있었다. 고백할 게 있다. 이 두 발견 모두 100% 내 노력과 상관없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발견은 내 의도, 가설, 혹은 예측조차도 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게 되었는데, 유방암 생쥐 모델을 연구하다가 수컷 생쥐가 비실비실 죽어가길래 검사해 보니 혈..
손해 보는 삶, 나누는 삶읽고 쓰는 삶이 일상이 된 지 7년이 지났다. 만남의 축복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말에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매년 한 권의 책을 신기하게도 쓰던지 번역했다. 2020년 ‘과학자의 신앙공부’ 저자로, 2021년 ‘닮은 듯 다른 우리’ 저자로, 2022년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 번역자로, 2023년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저자로, 그리고 2024년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저자로 서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단 한 권도 나 혼자 기획해서 투고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책이 순전히 만남 덕분이었다. 나는 그저 절박한 마음으로 성실히 읽고 쓰고 했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책 세 권의 저자이고 (..

흐르는 시간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면 우리는 그것을 오감으로 알아챌 수 있다.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는 힘을 가진다.보이지 않는 시간을 생각한다. 시간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시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적당한 빛이 머무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창밖의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달라지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세기와 눈부심도 차차 변한다. 무엇인가가 움직인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기 위해서 그것을 관찰하는 자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상대성 원리에 의해 우린 그 움직임을 알 수 없다. 나의 속도가 대..
순응과 순종 사이 순응을 순종과 같다고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순응은 수동적인 따름이고 순종은 능동적인 따름이다. 순응하는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 순종은 많은 질문과 의심 끝에 행해지는 고결한 자기 내어줌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중 하나가 자발적인 순종이라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다는 것도 나는 믿는다.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은 채 모든 일에 순응적인 사람은 언젠간 생각하고 질문할 시기를 만나게 된다. 시기가 다를 뿐 그 순간은 도적 같이 임한다. 어쩌면 사람마다 다른 그 시기가 그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순간을 맞이하..
운 그리고 과정 거칠게 말해서 인생의 팔 할 이상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는 그 운을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 혹은 섭리라고 믿지만 말이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공히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사람들은 아마도 이에 많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운이란 것을 아무렇게나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 혹은 성공이란 과정을 겪게 된 경우 사람들은 겸양의 뉘앙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운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운은 행동하는 자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예..

인정과 참회 사이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재독 감상문에도 썼지만, 초독 때 보이지 않았던 것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은 스따브로긴의 캐릭터에 관한 것이었다. 어제저녁 독서모임에서 세 시간 동안 나누다가 조금 더 정리가 되기도 했던 부분이다. 먼저 스따브로긴은 선과 악에서 모두 만족을 느낀다는 점, 그 무엇을 해도 자기 통제가 가능하여 어떤 사상이나 이념 혹은 악령에 사로잡히지 않고 스스로의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행동을 한다는 점,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남다른 힘을 잘 알고 있으며, 유치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모욕적일 수도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범죄 행위에 해당될 수도 있는 짓을 할 때 그 힘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의 신적인 우월함을 다시 한번 목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가 저지른..
읽기와 쓰기 업데이트1.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 발생과 노화, 다양성을 이해하는 발생생물학 수업‘이라는 과학대중서가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12월 10일 즈음 출간될 예정이다. 네 번째 저서다. 요즘 핫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 ‘찬란한 멸종’의 저자 이정모 관장님이 추천사를 써주신다고 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정말 영광이다. 어제 표지 시안을 받았다. 맘에 들었다. 내 사진이 띠지에 조그맣게 들어간다는 점만 빼면. 그러나 책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해서 사진을 싣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책은 상품의 정체성도 분명히 띠기 때문이다. 부디 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면 좋겠다. 2. 나의 대학/대학원생 시절의 이야기에 허구를 넣어 각색한 팩션, 기초과학자가 어떻게 길러지는지 대한..

집 밥내게 집 밥은 일상의 상징과도 같다. 이에 반하여 외식은 일탈의 의미를 갖는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대학 입학 전까지, 그러니까 20세기말까지 매일 먹던 그 당시의 나는 집 밥을 지겨워하기만 했다. 늘 똑같은 반찬과 똑같은 국 혹은 찌개, 혹은 매일 카레를 먹던지 매일 곰국을 먹던지 하는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알지도 그 사랑에 감사하지도 못했다. 철없던 나는 나의 불평이 합리적이라 믿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집 밥과 별 다름없는 학생식당 밥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야식으로 시켜 먹던 치킨, 혹은 통집에 가서 배를 채우던 술안주들이 내겐 삶의 큰 위안이었다. 대학교 3학년 ..

향수의 재현 불가능성직장 동료와 대화하던 중이었다. 등산 후 뭘 먹을지에 대한 물음에 대뜸 어죽과 도리뱅뱅이라고 했더니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 표정을 읽으니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어죽은 아버지와 함께 먹던 음식이라고.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갔을 때 종종 먹던 게 어죽이었다고. 어죽 하면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그에게 있어서 어죽은 한 끼 음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다. 향수일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오감이 모두 동원된 먼 기억의 단편일 것이다. 이후 나는 그 집 어죽과 도리뱅뱅이, 그리고 민물새우튀김까지 다른 집과 비교해서 얼마나 압도적으로 맛있는지에 대해 침을 튀기며 그에게 설명했다. 꼭 가보라고 권하면서 말이다..

다시 헤세: 헤세 다시 읽기마흔 무렵 재개된 나의 문학 읽기의 출발은 헤세였다. 중학생 시절에도 그랬다. 추리소설만 탐닉하다가 순수문학으로 전향한 출발점이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같은 작품을 시기를 달리 하여 읽는 맛은 오직 경험한 자만이 아는 은밀한 유희다.작년 9월부터 쉬지 않고 매달 모이고 있는 독서모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덕분에 미국에서 혼자 끙끙대며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재독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한 번 읽기도 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을 두 번이나 넘는 이 과업은 정말 인생에서 길이 남을 멋진 추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이 독서모임은 나 혼자선 감히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김관장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연으로 찾아왔..

막창의 여유집 근처에 막창 집이 있다. 유명하고 안 하고를 떠나 집에서 슬리퍼 끌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간단하게 술 한 잔 걸치며 만족스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건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다. 오늘 세 번째로 방문한 이 막창 집은 이제 우리 가족에게 하나의 작은 쉼터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삼겹살과 다른 막창만의 맛 (미각으로 느끼는 맛이 아닌 여기선 특색을 뜻한다)이 있다. 대학, 대학원생 시절부터 막창을 종종 먹어왔지만, 그땐 느끼지 못했다. 인생을 덜 살아봐서 그랬는지, 고생을 덜 해봐서 그랬는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이제 내일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막창에서 여유를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뒤늦게 알아버린 이 막창의 맛을 나의..

우물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갇힌 줄도 모르고 그 우물 안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우물 밖의 사람들을 판단, 정죄하는 자들 만큼 상대하기 힘든 사람도 없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를 우물 밖에서 찾는다. 그들의 우물이 곧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물 밖은 타락한 곳이자 범죄 한 세상일 뿐이다. 세상을 우물 안과 밖으로, 빛과 어둠으로 양분하는 그들에게 과연 구원이 있을까? 본인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에게만 가능하지 않을까? 본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데 구원이란 게 필요하기나 할까?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진 않을까? 진정한 구원은 철저히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법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자에게 자력 구원은 주어진 적이 ..

즉흥과 낭만 한 달 전 가족과 제주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우린 한라산 영실코스를 새벽부터 올랐기에 지상에 내려오니 고작 오전 11시경이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우도나 가볼까 하는 즉흥적인 마음에 우린 곧장 차를 돌려 성산항으로 향했다. 적당히 즉흥적인 선택과 과감한 실천은 여행의 맛을 더해주는 게 분명하다. 참고로 나는 T이지만 요럴 땐 극 F가 된다. 주차할 곳을 찾으러 가는 길에 우리 눈앞에 새로 단장한 회센터가 떡 하니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서 먹으란 말인가, 하는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면서도 혹시 비싸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놓을 수 없어 일단 들어가 둘러보려고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오마카세 느낌의 잘 꾸며놓은 식당 종업원이 우리에게 대뜸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호객행..

겨울의 기억들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더니, 오늘 아침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뜨거운 탕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은 것이었다. 욕조가 없는 터라 실행은 할 수 없었지만 대학원생 시절 종종 드나들던 찜질방과 거기에 딸린 공중목욕탕이 그리움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추위는 많은 것들을 소환한다. 나는 오늘 출근길에서 두꺼운 옷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겨울의 기억들 속으로 마음속 여행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아들 녀석이 붕어빵을 사달라고 했다. 현재 10학년 재학 중인 녀석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살았고 붕어빵을 경험한 건 한국 오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기했다. 이게 붕어빵의 힘인가 싶었다. 우린 하나씩 팥이 퍽 하고 흘러나오지 않게 조심스레 한 입씩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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