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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고 불가피하게 이집트 왕자의 자리를 떠나 미디안 광야로 떠난 시점은 이미 모세가 마흔살이 되었을 때다. 그리고 그 미디안 광야,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까지 보낸 세월도 사십년이다. 즉, 모세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어 희생 제사를 드리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시점은 모세가 여든살이 되었을 때다.
출애굽기에 주로 기록된 모세의 이야기는 바로 모세가 여든살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는데 하나님께 쓰임받는 장면들과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전 광야에서 사십년간 생활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모세가 태어나서 여든살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는 출애굽기 2장에 기록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사십년,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 그리고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야에서 사십년, 이렇게 총 일백이십년을 살았던 셈인데, 마지막 사십년이 우리가 알고 기억하는 대부분이다. 출애굽기라는 성경을 모세가 직접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마도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심을 받아 중요하게 기록해야할 부분이 그 마지막 사십년이었을 거라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모세의 일생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앞 부분의 팔십년은 서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생의 삼분의 이가 서론이라는 건 일단 자신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좀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21세기 인간의 평균 수명이 팔십이라고 할 때, 내 인생의 본론이 그 삼분의 이 지점인 쉰세살부터라고 가정해 보면, 참 생각만 해도 막막한데,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보낸 사십년이란 세월간 모세의 심정은 정말 어떠했을까? 개인적으론 요즈음 모세의 심경이 내 마음에 조금 더 와닿는다.
서른 여섯, 아직 삼분의 이 지점이 되려면 17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한 나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삼십대일 때 성공의 실마리를 잡고 사십대일 때 인생의 전성기를 사는 게 정석이라고 하는 세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난 아직도 성공의 실마리는 커녕 오히려 인생에 회의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난 정말로 인생 실패의 첩경에 들어선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본론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내 나이 서른 여섯이지만, 아직도 준비하고 있는 단계. 보다 큰 것을 위하여 아직 가리워져 있는 단계.
모세를 기억한다. 그 사십년이란 세월간 아마도 모세는 자포자기의 심경까지 치닿진 않았을까. 살인자의 신분으로 도망나왔고 본의 아니게 목숨을 잃지 않고 결혼도 하고 아기까지 낳고 키울 수 있었지만, 이집트에서 보낸 과거의 사십년의 세월이 미디안 광야에서 보낸 사십년의 세월간 얼마나 모세의 생각과 마음을 괴롭혔을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너무나 상반된 두 사십년의 세월을 모세는 모두 경험해 본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땐, 완전 인생 실패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땐, 둘 다 모세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몰랐다. 당사자인 모세조차도. 아마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의 사십년간 하나님이 혹시나 나중에라도 나타날지 기대했었다면 모세의 팔십년이 출애굽이 2장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리라.
때로는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이 있다. 그 당사자는 그 어려움을 겪는 동안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응답없는 삶. 비록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하나님께 예배는 지속적으로 드릴 수 있었을지언정 개인적으론 응답이 없는 삶을, 아마 모세는 살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하지만 모세는 어렸을 적 이집트에서 어머니에게 친히 들었던 복음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을 게다. 현재 삶의 응답과 열매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성취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은 모세도 유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지금 나의 삶이 과거에 비해, 아님 남들의 삶과 비해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 틀린 것도 아니다. 기다림. 시간표.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반석같이 변함없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연습. 그 와중에 기쁨과 평안을 얻는 것을 연습하는 삶. 남들에게 욕을 먹고 나 스스로 실수를 했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는 삶.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거다.
내 인생의 본론이 삼분의 이가 아닌 십분의 구에 시작되더라도 유지해야할 삶의 자세. 그것을 갖출 시간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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