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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이유: 구매자 vs. 독자.
갈수록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책을 구매하기가 망설여진다. 많이 팔리니 많이 읽힐 거라는 생각, 많이 읽힌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런 책은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내게서 힘을 잃어간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얼마 전부턴 반동적인 마음까지 생겨났다. 이젠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괜한 색안경을 끼고서 오히려 그 책을 한 발 떨어져 구경하게 된다.
사람들의 평에 영향 받지 않는 나만의 취향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그동안 베스트셀러 책을 구매하고 읽어보고 실망했던 경험이 누적된 탓일 테다. 스테디셀러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신뢰하는 편이지만, 이 역시 자본주의의 강력한 힘과 그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군중 심리로 물들어 있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저자 선정, 트렌디한 주제 선정, 지나치게 과장된 제목 선정 (내용은 허접하면서), 유명한 사람들로부터의 주례사 같은 추천사 받아내기, 그리고 작정하고 돈으로 도배하는 광고까지. 언젠가부터 베스트셀러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조형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은 불쾌하기도 하고 가끔은 모욕 받은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무엇보다 책을 만드는 이유가 팔기 위함인지 읽히게 하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구매자를 위해서인지 독자를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읽히지 않아도 팔리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책이 울 것 같다. 나는 책을 왜 만드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광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간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광고는 구매자가 아닌 독자들에겐 출판사의 성가시고 경박한 장난질 정도로 비쳐질 수도 있고, 오히려 광고 없이도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책에 대한 반감까지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읽고 나서 무조건 책이 좋았다며 칭찬해야 할 것 같은 압박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 바보 된 것 같은 느낌적 느낌에 빠지기 싫어서)에 묻어가는 멍청한 구매자 (아쉽게도 이들이 다수다)들을 가중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과도한 광고는 이러한 구매자들의 돈을 노리는 게 아닌가! 거품이나 공해 같은 구매자들이 아닌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러한 광도 없이도 책을 구매한다. 그중에서도 진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자기 용돈을 아끼고 밥까지 굶어가면서 책을 사기도 한다.
책에 대한 과도한 광고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와 군중 심리가 만들어낸, 돈이 전부라는 메시지를 은연 중 담고 있는 찌라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출판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은 이해하겠지만 (출판 시장만 안 좋은 건 아니다. 내가 있는 생물학 분야도 사정이 좋지 않다), 그리고 내가 출판업에 몸을 담고 있지 않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출판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본다. 한탕 건질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양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에 쓸 돈으로 차라리 500원이라도 책값이나 내려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지갑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돈만 밝히는 의사, 돈만 벌기 위해 일하는 의사는 피하고 싶은 게 당연지사 아닌가.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돈만 밝히는 출판사, 돈만 벌기 위해 책 만드는 출판사라면 나는 사양한다. 책은 숭고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 숭고함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건 너무 가오가 없어 보이지 않은가. 구매자가 아닌 독자 위주로 만들어진 책, 그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등 떠밀려서 사게 되는 책 말고, 없는 돈 아껴서라도 꼭 사고 싶은 책과 그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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