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해하기보다 느끼는 소설

폴 오스터 저,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를 읽고

퀸은 작가였다.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지금은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쓰며 산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탐정 이름은 맥스 워크이다. 퀸은 윌슨이 되어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한편으로 그는 워크가 되어 여전히 세상에 발을 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워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하고 미행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퀸에게는 허구일 뿐이다. 이쯤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퀸이 사는 세상은 실재하는 것일까? 허구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퀸에게 실재와 허구는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닐까? 구분이 되기는 할까?

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다. 잘못 걸려온 전화다. 퀸도 윌슨도 아닌, 폴 오스터라는 탐정을 찾는 전화다 (알다시피 폴 오스터는 퀸과 윌슨과 워크를 창조한 이 책의 작가 이름이다). 윌슨이기도 워크이기도 한 퀸은 자기는 폴 오스터가 아니라며 전화를 끊는다. 다음날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만 받지 못한 채 끊어지고 만다. 퀸은 호기심이 일었다. 운명 같은 걸 느낀 듯했다. 이젠 그 전화가 다시 걸려오길 기다린다. 며칠 뒤 놓치지 않고 전화를 받은 퀸은 즉흥적으로 (아니 이미 계획된 것일지도) 오스터가 되어 사건을 의뢰받는다. 여기서도 나는 의문이 생긴다. 그 전화를 받았던 오스터가 된 퀸은 윌슨이었을까, 워크였을까? 어쨌거나 퀸은 그 전화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스터가 된 퀸은 사건 의뢰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듣는다. 경도된 이단적 사상에 심취한 엘리트 교수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 9년간 감금 당해 정신은 물론 몸까지 망가져버린 한 성인 남자가 피해자이자 의뢰인이었다. 문제는 아들 감금으로 인해 13년간 감옥 생활을 하던 아버지 (스틸먼)가 내일 출소하여 뉴욕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의뢰자의 아내는 그 아버지가 돌아와 남편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두려워 퀸에게 아버지를 감시하며 남편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퀸은 알겠다며 착수금까지 폴 오스터 이름으로 수표 500달러를 받는다 (미국에서 수표는 받는 사람만 현금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퀸은 수표를 현금화할 수 없다). 마침내 퀸은 폴 오스터까지 된 것이었다. 돈과 상관없이 사건을 맡아 버린 것이었다.

스틸먼은 예상대로 도착했고, 비슷한 사람과 헷갈릴 뻔했으나 퀸은 실수하지 않고 그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의뢰자나 퀸의 우려와는 달리 스틸먼은 그저 노인으로 보일 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는 허름한 여관에 숙박하면서 매일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잡동사니들을 주워 모았다. 퀸은 지루해졌고 미행을 멈추고 스틸먼을 직접 만나 대화해 보기로 작전을 바꾼다. 스틸먼은 경도된 사상에 여전히 심취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변혁을 일으킬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날 대화를 했지만 스틸먼은 퀸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퀸이 스틸먼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대화를 했던 날도 있었는데, 스틸먼은 전혀 아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안에 갇히고 자기 사상에 갇힌 자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틸먼이 사라진다. 그가 머문 여관에 가보니 체크아웃을 했다고 했다. 아뿔싸. 퀸은 스틸먼을 완전히 놓쳐버린 것이었다. 

의뢰자의 아내에게 보고를 하려고 전화를 해도 계속 통화 중이었다. 어떻게 해도 연락이 불가능했다. 그날 이후 퀸은 의뢰자의 아파트 앞에 노숙자 신분으로 살아가며 몇 달간 의뢰자가 아파트를 나가는지 살피기 시작한다. 먹고살 돈이 바닥나자 퀸은 노숙자로 살기 시작하기 전 잠시 찾아갔던 폴 오스터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수표를 현금화해서 자기에게 준다고 했던 일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 (폴 오스터를 직접 찾아갔던 이유는 그가 진짜 탐정일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작가일 뿐이었다. 대신 이름이 같기 때문에 수표를 현금화할 수 있었고, 퀸의 자초지종을 듣고 난 이후 현금화해서 돈을 부쳐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때 진짜 폴 오스터는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다. 수표는 부도가 나 현금화할 수 없었고, 그가 미행하던 스틸먼은 두 달 반 전에 브루클린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말했다. 퀸은 전화를 끊고 의뢰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번호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노숙자 신분으로 살 필요가 없어진 걸 깨닫고 퀸은 집으로 찾아가지만 그 집엔 전혀 모르는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퀸이 몇 달간 집을 비워 아파트 주인이 짐을 모두 처리하고 새로운 세입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했던 것이다. 퀸은 집까지 잃게 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퀸은 의뢰자가 살던, 이제는 텅 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 공간에서 퀸은 자고 쓰고 먹고 (누가 음식을 준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환상일지도) 하다가 자취를 감춘다. 

이 작품의 화자가 누군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작품 끝에서야 알게 되는데, 화자는 퀸도 아니고 전지적 작가도 아니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친구이다. 퀸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오스터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퀸이 빼곡하게 적어놓고 아파트에 남기고 간 빨간 공책에 써진 글로 미루어 작성된 것이다 (즉 이 책의 써진 글은 정확한 사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동시에, 읽다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독자는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는, 작가에게는 논리적 일관성이나 개연성의 결핍을 보완할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로 작용한다). 

퀸은 무엇을 쫓았던 것일까? 유령을 쫓았던 건 아닐까? 모든 게 누군가의 설계로 인해 진행된 연극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누구의 설계였을까? 왜 그는 퀸을 파괴시키려고 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한 사람의 운명이 기구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인 것일까? 

언뜻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헷갈릴 여지도 충분히 있는 작품이지만, 저자의 글쓰기는 내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스틸먼의 경도된 사상을 써놓은 부분을 읽을 땐 움베르토 에코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오로지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소유물인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 전개에서 논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부분도 보이고 엉성한 구성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다음 작품을 읽어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다. 글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가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뉴욕 3부작'의 나머지 두 편, '유령들'과 '잠겨 있는 방'도 마저 읽어봐야겠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느끼려고 하며 읽어볼 생각이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