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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기회주의자

가난한선비/과학자 2016. 10. 26. 04:14

한 진영이 기울이질 때 나타나게 되는 전형적인 두가지 인간의 유형이 있다.


첫째, 기울어지고 있는 진영의 우두머리에게 평소보다 과장해서 충성을 다해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유형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충성은 그 우두머리에 대한 인격적인 존경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 보단, 자기 딴에 형세를 봤을 때 현재는 잠깐 기울어지는 것 같아 보여도 자신이 속한 쪽이 여전히 실세를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우두머리도 그 ‘충성’의 의미를 알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그 충성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힘으로 이용한다.


둘째, 서서히 다른 진영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속한 진영의 단점을, 마치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인정하는 유형이다. 상대편 진영으로부터는 ‘그래도 생각이 있는 적’ 정도로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수위만 잘 맞추면 자기 진영으로부터는 마치 건설적인 미래를 향하여 혁신을 꾀하는 개혁파 정도로 긍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물론 이 사람의 내면에는 이미 상대 진영이 승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 있고, 미리 그에 발빠르고 비밀스럽게 양다리 작전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첫번째 유형은 더 확실한 자기 진영의 색깔을 띠게 되고, 두번째 유형은 어찌보면 누구편인지도 모를 정도로 회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이 두 유형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신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도 자주 보여주기 시작한다는 거다. 저 사람 왜 저러지? 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며, 그럴때마다 자신을 합리화하느라 전전긍긍하게 된다. 물론 그 합리화는 완벽하지 않다. 너무나 반대되는 입장을 평소보다 더 강하게 주장해야 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 둘을 한꺼번에 포괄할만한 이론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거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것쯤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을 테고, 스스로에게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며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기 내면에서부터 괴리감이 들어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닐텐데, 그래도 왠만해선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이미 도덕이나 윤리 따위가 안중에 없고 정의와 사랑 따위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툴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샌가 무엇을 위해 자신이 존재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옳은 일을 하는지조차 잊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걸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유치한 장난 정도로 여겨질테다. 인간의 존엄성은 돈으로도 사고 팔 수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추락하여 공정함이란 이미 먼 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익숙하지 않는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하여 모든 것을 자기의 소견대로 바꾸려고 하는 자들.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악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상실된 시대.


그렇다. 우리가 사는 현 시대이고, 이는 하나님나라가 절대 필요한 이유가 된다.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모인 공동체에게 임한 하나님나라가 죄와 악이 가득한 지금 이 곳에 필요한 것이다. 오직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 백성들이 구별된 거룩함을 입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것을 후대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며, 사회/경제/정치/문화, 모든 분야에 이르러 기본적인 규범의 뿌리가 되고, 다양성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고 보호받고 있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논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더이상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게 되는 나라. 하나님나라. 난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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