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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옛 친구를 위한 조언

가난한선비/과학자 2016. 10. 26. 04:15

떡을 위한 삶이 인생에 있어서 서론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 후대를 살릴 제자운동을 위하여 헌신하고 순종하는 삶이 인생의 본론이라는 것도 마음에 진심으로 새겨졌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론을 위한 기도제목, 가령 명문대 합격이나 사업성공, 질병치유 등의 자기 소원성취와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행위는 기복신앙과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의 신앙의 중추적인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서론은 본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론이 좋으면 본론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인하여, 현재 서론 위치에 있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1등의 자리에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엘리트층으로 가면, 즉 성공을 하면,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거리 청소부가 아닌 대통령으로 복음을 전하자는 논리였다. 그리고 항상 이런 말이 나올 때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청소부도 복음을 얼마든지 전할 수 있다는 말이 덧붙여졌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서론과 본론을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서론과 본론을 구분하는 기준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또 인간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으나, 내가 처한 현실이 위에서 나눈 기준으로 볼 때에는 여전히 서론에 위치해 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서론에 위치해 있으면서 마치 영적으로만이라도 본론에 속해야겠다는, 다분히 관념적인 차원으로만 서론/본론의 구분이 그 동안 내게 각인되어 있었음을 요즘 들어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난 서론과 본론을 구분하는 논리로 참 하나님나라 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기본 원리가 하나님나라 원리라는 식의 가르침이 성경적이고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하나님 백성들에게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성을 알게 하고, 서론에 있든 본론에 있든 상관없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며 해야할 실제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론과 본론을 구분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부정적인 현상 (내가 겪었던 것처럼)은, 예를 들어 학생 신분으로 서론/본론 논리를 듣게 되었을 때 하나님나라 복음이 관념적으로만 각인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학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과정이 어떻든 일단 결과를 좋게 만들어야 본론 인생을 시작할 때 좀 더 유리한 입지에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서론/본론의 구분이 시간이 아님에도 공부하거나 뭔가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얼른 서둘러서 이 중요하지도 않은 서론인 학업을 끝마치고 본론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될 수 있다. 본론은 안타깝게도 서론이 끝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론 인생을 살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본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가? 서론, 즉 학업을 하면서, 본론, 즉 하나님나라를 누릴 수는 없는 것인가? 서론과 본론이 동시에 일어날 순 없는 것인가? 서론과 본론을 나누는 게 과연 적합한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서론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만 본론 인생의 첫 시작을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난 복음적이지 않다고 본다. 늘 덧붙여지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저 둘러대며 대충 입을 막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웬만해선 성공해서 복음 전하자라는 말과 어떤 직업이든 복음 전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 정반대의 말이기 때문이다. 이건 논리의 비약도 아니고 사실 실컷 욕해놓고 욕을 한 건 아니라고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이는 것과 같은 영혼 없는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서론은 중요하지 않고 본론이 중요한 것이라고 해놓고 서론을 성공해야만 본론을 잘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예수님이 목수가 아닌 진짜 세상의 부와 권력을 가진 왕으로 오셨으면 더욱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거란 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서론 성공을 은근히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나라 복음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을 난 꼭 말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엘리트 복음화를 마치 전체 기독교의 사명인 것처럼 강조하는 문화도 난 이제 와선 납득하기 힘들다. (나도 엘리트였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그 운동을 그 동안 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 엘리트가 아니었다면 괜한 자책에 자존감까지 낮아질 수 있었을 것 같다.)엘리트층에도 복음이 필요하지만 비엘리트층에도 복음이 필요하다. 물론 당신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방어적이지 말고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볼 순 없겠나? 왜냐면 엘리트 복음화의 이유는, 엘리트층이 사회 영향력을 가진 리더급에 포진해 있어서 그들을 복음화하면 그들을 따르는 비리더급의 사람들이 복음의 영향력 안으로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가 그 시작이 아닌가? 관념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과연 실제적으로 그런가? 물론 구약성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엘리트층에 있었다고 해석할 순 있겠지만, 그들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엘리트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물론 한 사람의 리더가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관건은 그 영향력이 과연 복음의 영향력으로 발휘될 수 있냐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비리더급의 한 사람의 영향력은 리더급의 그것보다 작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복음의 영향력이 사회제도에서 나눈 등급에 의존적이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만약 현재 사회 제도의 리더급에 당신네들이 다 포진하게 된다면 (사실 이것이 당신네들이 추구하는 운동의 실체인 것 같다만), 정말 세계복음화가 효과적으로 빨리 진행되리라 생각하는가? 그럼 그 리더는 계속 그 리더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당신네들의 초점이 엘리트층에 있는 것이 마치 당연한 문화인 것처럼 되어 있을 때 실제 비엘리트층에 속한 사람들은 아무리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더라도 거부감이 들거나 하루 속히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것 같지 않은가? 그것도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만약 서론에 있던 어떤 한 학생이 명문대를 입학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자기 부족함으로 인하여 좀 더 불리한 위치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할 것 같지 않은가? 그게 사실인가? 명문대 입학을 실패한 그 학생에게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당신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일구이언하는 셈 아닌가? 마치 실패자에게 입바른 위로하는 거랑 별반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아무래도 당신네들은 결국 성공을 복음 전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같아 보이는군. 결국 세상의 논리와 기독교의 진리를 아주 교활하게 잘 짜집기해 놓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특히 예수님의 복음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어 보이는군.


1등이나 꼴찌나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행해야 하며 정의와 사랑을 기본 원리로 하며 윤리적으로 선을 행하며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돕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하나님나라 원리를 서론과 본론의 구분 없이 사회에서의 성공자와 실패자의 구분 없이 모든 하나님 자녀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친구여, 제발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주게나. 자네가 그렇게나 헌신하고 있는 대상인 후대들의 성공 마인드를 이젠 그만 이용하게나. 자네가 정해 놓은 성공자의 사회 영향력은 사실 복음의 영향력과는 별 상관이 없다네. 괜히 전도/선교라는 관념적인 이유를 만들어 후대들에게 성공해야겠다는 마인드를 심어주지 말게나. 이왕이면 성공해서 복음 전하자는 말은 정말 위험한 말이었다는 점을 자네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이런 조언하는 나를 마치 은혜받지 못한 사람처럼 불쌍하게 여기거나 사단의 앞잡이 노릇하는 것처럼 악인으로 몰거나 하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네. 그러나 만약 그런 마음이 혹시라도 든다면, 그건 자네 역시 자네가 만들어 놓은 사상으로 세워진 자네의 왕국을 지키고 싶어하는 자네 안의 깊숙한 인본주의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일테야. 하나님나라 원리의 초점은 우리가 정의하는 서론이나 본론의 "과정" 속에 있다네. 자네가 정의하는 성공의 "결과"에 있지 않고 말이야. "결과"가 복음 전달의 유리한 위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전부라네. 전도와 선교는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게야. 하나님은 그 "과정"에 함께 하시지 사실 "결과"엔 별 관심 없으시다네. 진심으로 자네 안의 모순을 깨달았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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