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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하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계단을 오를 땐 근시안적이어야 한다. 바로 앞의 한 계단만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뎌야 한다. 모든 계단은 바로 그 한 계단의 반복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끊임없이 인지해야 한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계단을 밟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성실히 오르는 것이다.
앞이 캄캄할 때 필요한 건 멀리 내다보는 장기 마스터플랜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만이 깊고 깊은 터널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의 무게에 짓눌릴 때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견뎌내는 것이다. 지력보다는 정신력, 정신력보다는 체력이, 즉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 견뎌냄의 중추를 이룬다.
유령 같이 배회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이다. 어떤 기가 막힌 샛길을 찾아내면 이 순간들을 쉽게 타개할 수 있을 거라고, 몸과 마음을 관리하지 말고 더욱더 일에 집중하면 그만큼 더 빨리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 거라고, 계속해서 그 목소리들은 귓전에서 맴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하며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르고, 체력이 모자라 마지막까지 억울함에 가득 찬 상태로 어처구니없게 모든 걸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내 앞에 놓인 계단 하나를 성실히 오르는 것. 나는 이 단순한 행위의 저력을 안다. 그 힘을 믿는다. 그리고 구원 역시 그 도상에 있을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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