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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_’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을 읽고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
마르크스를 빨갱이로만 알던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한 세대 이른, 소위 586 세대들이 대학시절에 심취했던 사상가이고 사회주의와 관련되어 있었고, 내가 중학생 시절에 소련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인지, X 세대인 나에게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잔재만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마르크스를 인류에 영향을 끼친 사상가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인정하는 걸 보면 분명 내가 전해 들은 마르크스는 실제의 마르크스가 아니었다. 몇 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참석했던 철학읽기 모임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개론서를 함께 읽었는데, 그제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 자본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유물론적 변증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빨갱이도 아니었고 경도된 사상가도 아니었으며 거친 혁명가는 특히나 아니었다. 천재 같았고 인식론적 혁명을 일으킨 사상가로 보였다.
동녘에서 나온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을 동료 두 명과 함께 읽어나가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철학 공부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약간의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해서 나를 묶어두기로 한 것이다. 때론 이런 매임이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이 역설을 나는 잘 알고 언제나 기쁘게 이용하려 한다. 첫 꼭지가 마르크스였다. 미국에서 잠시 공부했을 때의 기억이 아주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몇십 페이지로 끝낼 수가 없는 사상가이기 때문에 이 짧은 분량으로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이번에 이 꼭지를 읽으며 다시 감동한 부분은 주로 잉여가치론에 대해서였다.
먼저, 역사를 추동하는 것이 계급투쟁이라는 것, 고대나 중세와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착취는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 착취는 유일하게 잉여가치를 생산해 내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에 있다는 것, 상부구조인 철학이나 종교, 사상 등이 토대인 생산력과 생산관계, 즉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보다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것, 등등. 이 사실들을 다시 하나씩 짚어보니 한 시대의 중심 사상이랄까 철학이랄까 하는 것은 곧 지배 계급, 즉 돈을 가진 부류, 다시 말해 착취자의 사상과 철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사상과 철학과 같은 정신적인 그 무엇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화폐가 자본이 되는 유물론적 변증법이 실제로 자본주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았다 (이것의 연장선 상에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나온,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종교로 민중을 취하게 만들어 진짜 현실인 물질적 토대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파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존재, 프롤레타리아를 종교로 물들이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가의 존재를 떠올리며 불의하고 악한 이미지가 겹쳐졌다.
물론 시대가 변했다. 과학 시대가 되었고, 유물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물질 노동이 노동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단순한 관계가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수직적, 수평적 직급들이 끼어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 역시 마르크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착취라는 개념은 특히 더욱더.
진실을 알고 보길 원한다. 종교나 사상에 취해 알고 보아야 할 것들을 지나치지 않길 원한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길 원한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시대에 해낸 것처럼 21세기에 현재 우리도 그 눈을 가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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