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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없는 공부와 깨달음이 공허하다면,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 없는 실천은 무의미하다. 전자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면, 후자는 쇼에 불과하다. 전자의 폐해는 지적 교만이겠지만, 후자의 폐해는 쓸모 없는 죄책감의 사슬이다.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 없는 실천은 지속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 풀에 지쳐 온갖 합리화의 소용돌이에 파묻혀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죄책감의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인간의 의지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몸이 마음을 잠깐 속일 순 있겠지만, 결국 마음과 몸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법이다. 또한 그러한 실천은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리 없다. 정죄와 비난을 일삼기 쉽다. 스스로 그 근본 없는 실천이라는 행동 자체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며 실천하고 있는 자신을 남과 차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치관과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 없는 수박겉핥기식 실천의 폐단이다.
뻔한 결론이겠지만 중요한 건, 그렇다. 밸런스다. 즉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동반한 실천이다.
물론 몸으로 하는 작은 실천을 여러 번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바른 공부와 묵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실패 후 더욱 고약해지기도 하는 이유와도 같다. 그러므로 자신이 걸어온 길과 다르거나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만 파악하고, 그 사람에 맞게 인도를 해주는 것이 바로 인도자나 리더가 해야할 사역이 아닐까 싶다.
방법의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마치 진리의 희석화나 다원주의식의 상대적 진리와 똑같이 죄악시하는 행위는 결코 리더가 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트랙 위에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권한다.
책 한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난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내 조언이 거북하다면, 글쎄 그건 나의 교만일지 당신의 옹졸함일지 잘 한번 판단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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