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에게도 두 세계가 있었다. "데미안"은 나를 추리소설의 세계에서 문학의 세계로 이끈 안내자였다. 그렇게 15살에 처음으로 읽었던 "데미안"을 25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게 됐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았던 오늘 오후, 난 올드 몬로비아에 위치한 한 베트남 쌀국수 집에 앉아서 허현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께서 마침 5분을 늦으시는 바람에 책을 끝까지 읽을 수가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클리블랜드에서 인디애나로 이사오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내 주위의 거의 모든 환경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나의 내면의 변화가 컸다. 심이 깊게 박힌 티눈처럼 내 안에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던 성공지향적 가치관이 비로소 그 뿌리를 드러내고 참혹히 잘려져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버렸다. 그 죽음이 끝일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잃지 않으려 버텼지만, 그 유아적 생명은 죽어야만 했던 세계였다. 그리고 난 이렇게 살아있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그렇다. 새가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오듯,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했던 것이다.
인간은 어쨌거나 성장하는 법이고, 그 성장은 언제나 두 세계의 만남을 기반으로 한다. 성장은 변태이자 진화다. 같은 것 같으나 다른, 다른 것 같으나 같은 모습으로의 탈바꿈이다. 단지 수평적인 세계로의 이동이 아니라, 기울기가 있어 보다 높은 차원을 가진 세계로의 상승진입이다. 그 과정은 또한 치열한 투쟁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래봤자 동일한 육체를, 아니 죽음에 좀더 가까운 육체를 지니게 되겠지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자신을 이루는 내면세계는 점점 그 깊이를 더해간다. 어찌 보면 무한급수로 이루어진 카오스의 프랙탈 모습과도 비슷할, 그래서 부분이 전체의 작은 닮은 꼴인 동시에 전체가 그 작은 부분의 모습과도 같은, 그러면서도 어떤 규칙과 패턴을 가지는, 그러나 끝내 완성되지 않을 무한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그렇다, 인간의 성장은 신비다. 그 자체로 신비한 존재인 인간이 ego를 넘어 self의 단계로 진화하는, 처음에는 의식세계가 다인줄 알았지만 곧 무의식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된 무의식은 해석과정을 거치며 의식세계로 넘어와 의식이 되고, 이는 또다시 하나의 무의식세계를 넓히는 역할을 하게 되는, 이 신비한 과정이 우리 인간의 숙명이자 바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데미안"은 그저 싱클레어라는 사람이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의 성장과정을 시간 순으로 그린 청소년드라마라든지 회고록이 아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철학적이고도 심층심리학적인, 그러면서도 굉장히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데미안"을 15살에 읽었던 과거의 나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가치관의 큰 변화를 겪어낸 40살의 현재의 나는 달랐다. 이 책의 심층구조가 보였다. 작가의 의도를, 완전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25년 전보다는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세계라는 개념은 물론, 이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보여지는, 투쟁하며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되어가는 과정과도 같다는 것, 아프라삭스라는 신이나 에바 부인이라는 살아있는 인격체로 표현되는 것이 삶의 전체성이라는 사실까지도 이해가 되었다.
이 비약적 발전이 25년이란 세월의 힘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반"의 결과, 즉 "데미안"이 남겨놓은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이 나에게 생겼다. 이는 내가 최근에 깨뜨리고 나온 성공지향적 가치관이라는 알의 세계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의 산물인 동시에 하나님나라라는 진정한 아프라삭스를 만난 열매일 것이다.
to be continued.
'김영웅의책과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다시 읽고 (2) | 2017.08.04 |
|---|---|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고 - 현재편 - 두번째 이야기 (0) | 2017.08.04 |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고 - 과거편 (0) | 2017.08.04 |
| 사무엘 베케트 저,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0) | 2017.08.04 |
| 스탠리 하우어워스 저, '한나의 아이'를 읽고 (0) | 2017.03.28 |
-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