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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읽었다. 21세기 현재, 나와 동시대를 살며, 같은 하늘과 같은 해와 달을 보며 아침과 밤을 맞이하는, 게다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의 글이어서 그랬는지, 문학 고전을 읽을 때나 신학이나 철학 책을 읽을 때와는 책이 성큼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결코 크진 않았지만, 소신이 뚜렷한 움직임이었다고 해야 할까. 공감해 달라고, 감동해 달라고, 아니면 교훈을 발견하라고, 은유 속에 숨겨놓은 깊은 뜻을 찾아내라고 하는 요구도 없었다. 그냥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마치 그 어느 것보다 내가 더 공감할 거라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랬다. 정말 그랬다. 별 생각 없이도 뭘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이 책은 그냥 일상의 한 토막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어느 가정에서 일어나는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일들이다.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여자가 엄마로 등장하지만, 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화자는 위녕이라는 딸이다. 작가는 위녕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다분히 여성스러운 색채가 진하지만, 담담히 그려낸다. 우리 시대에서 일상 속에 깊숙이 만연해 있는 암묵적이고 구조적인 부조리로 책 곳곳에 은근히 드러내기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상처도 받고 아파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가족의 의미와 사랑의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견뎌내고 극복해내며 그 일상을 다시 성실히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책이 남겨 준 잔상을 음미하려니 내 얼굴에선 웃음이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이 책을 공감하며 위로도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곧 흩어져버릴 잔상을 붙잡아 두려고 노트북에다가 글을 써내려 가고 있지만, 확실히 다른 책과는 다름을 또 느낀다. 분석할 차가운 머리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읽고 반응할 (때론 눈물도 함께 흘릴) 따뜻한 가슴만 있으면 된다.


왜 이 책이 따뜻할까 생각해 보니, 요즘 있었던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와 어쩌면 내게 부족했던 사랑이나 어떤 감정 같은 것이 이 책을 다른 책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위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 내겐 때맞춰 찾아온 고마운 선물 같은 책이다. 추천해 주신 ByungJoo Kim 집사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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