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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더 강한 바람과 더 뜨거운 태양이다. 불평을 없애는 방법도 두 가지다. 하나는 공포, 또 하나는 감사다. 이 두 가지 논리의 맥락은 같다. 강제와 자율, 타의와 자의이다. 이것이 우리가 책 속에서 배운 교훈이다.
그런데 아니다. 틀렸다. 적어도 화씨 110도의 서던 캘리포니아에서는 말이다. 평소보다 더 뜨거운 태양은 행인에게 감사가 아닌 공포를 주며, 불평은 더 증폭될 뿐이다. 외투를 벗으면 지독히도 강한 자외선에 고스란히 노출될 뿐 아니라, 자칫하다간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차마 벗을 수가 없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태양을 피한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말이다. 강한 바람이면 더욱 좋다. 옷을 자의로 벗고 땀을 말리고 싶다. 혹시 태양을 피할 수 없다면 옷을 벗어젖히는 것보단 차라리 바람 잘 통하는 얇은 옷을 걸치고 있는 게 낫다. 단, 직사광선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고통으로 인한 불평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이렇게 더운 날은 처음이다. 다른 건 사치로 여겨진다. 일단 살아남자는 생각밖엔 없다. 그러나 이것도 사치다. 휴스턴의 수재민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헌금한다.
서로 돕는 공동체. 극단적 일상 속에도 하나님나라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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