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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여러 모습을 가진다. 그리고 그 발달과정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교만이란 옷을 입기도 한다.
합리화는 인간의 속성이다. 합리화를 주무기로 하여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나 이익을 중심으로 공동의 선이나 질서를 훼손한다. 마치 모두에게 유익한 것처럼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합리화의 진화가 빠르기 때문에 고도로 교묘하고 치밀하다. 때론 정말 우리가 잊고 있었으나 꼭 필요했던, 감히 누구도 찾아낼 수 없었던, 틈새에 숨어 있었던, 공동의 유익을 도모할 방법을 찾아낸 것만 같다. 물론 이러한 뜻밖의 기회로 공동체의 상황이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주모자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타이틀 대신, 어느새 ‘고마운 영웅’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고 있는 모습을 우린 군중들 한 가운데서 목도하게 된다. 자, 과연 이 자는 진정 영웅인가, 아니면 위선적인 사기꾼인가?
열등감의 표출이 교만이 될 때가 의외로 허다하다. 이는 보통 순진하고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인품과 성품에서 별 나무랄데 없는 사람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교만의 발달과정보단 이러한 소극적 교만의 발달과정이 결과론적으로 훨씬 위험할 때가 많다. 우리는 위인전을 읽을 때나 그 사람의 어릴 적 히스토리를 접하게 될 때,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한 번씩은 모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모두 다음과 같은 해석을 자연스럽게 했을 것이다. ‘아, 어릴 때에는 나쁜 애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친구를 잘못 만나거나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나중에 커서 악하게 변했던 거구나’라고. 뜻밖의 인물이 언제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우린 모두 직/간접적으로 불의에 발을 담그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지만, 알고 보면 그 평화는 누군가의 커다란 불의로 인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그 세대에 태어났다면 그 표면적인 평화가 참 평화인 줄로만 알고 살아갈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평화를 누리는 것도 불의를 묵인하는 셈이 된다. 너도 나도 모두 불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는 합리화에 의해 증폭된다. 큰 악을 저질렀던 사람은 보통 미래를 위하여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곤 한다. 즉 자신의 불의가 마치 꼭 필요했던 것마냥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 때 합리화는 곧 미화가 된다. 그 악인도 실제로는 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악인은 스스로가 악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남들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역사를 조작하고 목격자를 처단하고 언론을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면서까지 온통 합리화 작업에 열중한다. 하나의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져 조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불의를 증거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던 불의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사실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것이 겸손이다.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저질러진 불의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제거할 수는 없다. 죄악이 휑휑한 이 시대에 몸에 보이지 않는 핏자국이 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간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린 불의를 연장시키거나 증폭시키지 않을 수 있다. 불의 앞에서 겸허해지자. 수용하고 용서하자. 불의로 얻은 것, 잃어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 나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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