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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소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2. 8. 04:15

이미 비워버린 음료수 캔에 적혀있는 글자 하나하나를 벌써 수십 번이나 성실하게 읽었을 때였다. 드디어 내 번호가 깜빡였다. 그러나 이미 내 감정은 더 이상 폭발할 수 없는 휴화산, 아니 사화산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는, 마치 기계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그냥 집에 가라고 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응 알았어." 하면서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태. 내가 영혼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잊어버린 상태. 처음 경험해 보는 사막과도 같은 더위 가운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뭇 외국인들의 땀냄새를 맡으며 난 그렇게 2시간 가량을 무아지경 속에서 멍 때리고 있어야만 했다. 작년 여름,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지 며칠 후 DMV에서였다. 난 결국 자료 미비로 인해 삭고 마른 울음을 삼키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얼마 후 자동차 등록과 운전면허증을 모두 처리했지만, 그 날의 기억은 나의 캘리포니아에 대한 첫 인상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차를 덮을 정도의 많은 양의 눈과 늦은 4월까지도 눈발을 뽐내던 클리블랜드, 화씨 마이너스의 온도도 여러 날 연이어 뼈에 사무칠 정도로 경험하게 해 주었던 인디애나에서의 생활을 거치면서,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내게 있어 꿈의 장소였다. 그러나 정작 내가 마주한 첫 캘리포니아는 내 영혼을 앗아간 불쾌한 도둑과도 같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도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했었던지 말이다.


살면서 꿈을 꾸며 막연한 기대를 할 때가 있다. 보통 그것들은 현재의 결핍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은 무언가를 손에 쥔 순간 아주 잠깐의 성취감을 맛본 후, 아직 손에 쥐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곧 허기짐을 느끼며 다시 집착하게 되는 법이다. 늘 부족하며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이기야 하지만, 그런 물질지향적이고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의 사람들은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모든 삶이 불안함과 불만족으로 수렴이 된다. 마치 꿈꾸고 왔으나 내게 보여진 실망스러웠던 캘리포니아의 첫 모습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백성들은 불안함에 마찬가지로 노출되기야 하지만, 미래의 소망이 있다. 그 확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로 주어진 그 소망의 확신. 신실하시고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튼튼한 기반을 둔 소망. 오늘 밤은 유달리 내게 이런 소망이 있음이 참 감사하다. 바울의 로마서와 권연경 교수님의 '로마서 산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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