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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프라이버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2. 8. 04:18

일의 양이 많을 때 그만 둔다면, 일이 많을 때를 참아내지 못한, 참을성 없는 자신의 인내심을 탓하게 될 것이다. 만약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만 둔다면, 자신의 부족한 문제 해결 능력을 탓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일을 지속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만 둔다면, 평생 그 환경을 탓하며 미처 다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을 가진 채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이 예상 외로 잘 풀리고,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에 비해 과분할 만큼의 칭찬을 듣고, 게다가 환경 또한 자신만 집중하면 될 만큼 별 장애물이 없을 때 일을 그만 둔다면 어떨까? 이 사람을 우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가장 쉽고 흔한 접근 방법은 '개인적인 이유'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냥 그 일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무시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택한 사람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라는 교양적이고도 동시에 예의도 적당히 차릴 수 있는 그럴듯한 단어다. 그런데 이 때 이 사람이 택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행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리의 무관심은 아주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안에 잘 포장된 이기적인 욕구로 정당해진다.


"스스로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내가 관여를 해?" 라고 한 마디로 반박하면 무관심의 낌새를 눈치 챈 사람의 느닷없는 질문도 거뜬히 넘길 수 있다. 그야말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은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아주 선진국스럽다.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답시고 미리 그 사람이 말을 안 해줄 거라는 눈치를 채고, 그 눈치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을 그 당시, 당신은 혹시 두 가지 마음이 아니었던가? 만약 정말 관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상 그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었다면, 다음에 만날 때까지 마음 속에 품고 기도하고 있다가, 만났을 때 다시 물어볼 기회를 찾으려고 애써 보았는가?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삶의 개혁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는 삶. 그것은 바로 우리의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부터 출발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은 사람 하나 없고 고민 없는 사람 하나 없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곧장 실행할 수 있다. 밥을 함께 먹자며 가볍게 시작할 수도 있고,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며 주변적인 얘기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도 좋다. 관심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사랑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한 마디로 상대방이 먼저 고민을 얘기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멍석 깔아 주는 일. 이게 진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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