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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폭풍 같은 시련을 겪어내고 살아남는 건 문제가 아니다. 거기엔 그다지 뾰족한 수도 없을 뿐더러, 준비도 예측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련은 결국엔 지나간다. 이때, 지나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은, 어쨌거나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린 우리의 생각이나 두려움, 용기, 준비와는 거의 상관없이, 타격을 입은 정도만 다를 뿐이지 살아남는 존재다 (때론 이 살아남음이 오히려 더욱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이땐 정말 무엇이 시련인지 무엇이 목적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살아남는 게 목적이었건만, 다 지나고 막상 살아남게 되자 모든 걸 잃은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모든 기준과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심연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진짜 문제는, 더 이상 후퇴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폭풍을 정면에서 맞닥뜨리기 직전의 찰나다. 공포와 두려움의 정점에 위치한 그 순간, 우린 보통 기어를 중립에 놓듯, 몸을 그 거대한 흐름에 내어 맡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손에 쥐어진 카드는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주먹을 꽉 쥔다 해도, 엉덩이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긴장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우린 그 포효하는 굉음과 진동을 역설적인 침묵과 고독으로 느끼며, 흐름에 휩쓸려 가게 된다. 무한의 의미를 가지는 폭풍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낱 미물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비로소 한 번도 굽혀보지 않아 굳어버린 무릎을 꿇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시련은 또 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 주먹을 펴고, 엉덩이에 힘을 빼고, 스스로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폭풍을 맞이하고 싶다. 즐기는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남게 되어 있다면, 중요한 건 어떻게 그 찰나를 나중에 기억하게 되느냐다. 이는 그 찰나인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내는 것은 곧 현재를 초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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