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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5. 11. 05:38

악.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을 경험할 때조차, 시기와 정도는 다를 뿐, 두 가지의 감정을 동시에, 아니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느낀다. 도움을 베푼 사람에 대한 충만한 고마움, 그리고 뭔가를 강탈당한 것 같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바로 그것이다. 후자는 수치와 죄책감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성과 양심에 반하는 감정이라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그래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그 순간으로 자꾸만 생각이 회귀되고, 이는 급기야 그 순간에 대한 미련과 함께, 자신을 향한 원망과 실망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후자의 감정을 이루는 중추다. 외부로부터 온 은혜와도 같은 타인의 도움을 순식간에 부차적인 선택 사항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은인을 강탈자로 둔갑시켜버리는 이 놀라운 기술은 자기 기만의 대표적인 표현형이다. 어쩌면 이런 부류는 나중에 도와줬던 사람에게 가서 그때 왜 도와줬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혼자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마치 성숙한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이 시대의 문화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상황이나 상태를 가능한한 피할 것을 요구하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고 우리는 교육받아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이상적인 사회는 주위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강한 자아가 되어 일어서는 거라고 우린 암묵적으로 배워왔다. 이런 상황에선 타인의 도움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고, 감사가 아닌 수치가 되며, 은혜가 아닌 강탈이 된다. "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갔는가? 감히!!!" 그리고 나의 왕국은 다시 살아나며 난 왕으로 다시 취임한다.


서로 도우며 사는 세상을 '이상적'이라고 상정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서로 돕는 행위는 마치 최후의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서로서로 자기 왕국을 튼튼하게 세우려고 하면서 어찌 그와 동시에 남을 돕는다는 말인가. 모순은 아닐까.


도움은, 아니 모든 인간관계는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지 않고선 공동 이익을 위한 계약 관계 정도의 의미로 그칠 것이며, 우리 안의 왕국은 점점 악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시간과 공간에 빈틈없이 가득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런 모든 악이 사라진 곳이라 믿는다. 서로서로 도우며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받고나서도 감사로만 충만한 그런 곳이라 믿는다. 난 그 나라를 오늘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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