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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지식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0. 15. 15:47

**잡담. 흘러가는대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옮김**


지식.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을 이해했다고 해서 지금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나 통계로 특정 사건을 설명하려고 할 때 우리들이 늘 겪는 오류다. 각 개별 사건들이 모여 전체 사건을 이루고, 일반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전체 사건은 개별 사건들의 합으로 이루어지지만, 언제나 개별 사건은 전체 사건의 여집합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구체성을 가진 한 인간은 일반적인 인간을 넘어서는 전체 중 전체요, 전체를 알아도 알 수 없는 신비다.


그렇다면 공부를 해서 여러가지 예를 익히고 일반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 결국 한 인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반적 지식이 도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인간을 이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공부와 연구를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결과라기보단 과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어느 시대에 누가 어떤 사상을 말했고 또 그 사상이 누군가에 의해서 뒤집혔다느니 해체되었다느니 하는 정보들을 머리 속에다 일일이 집어넣는 것보단 철학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너무나 당연해서 듣다가 기절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철학적인 지식들을 남들보다 많이 섭렵하다가 철학적 사유능력을 습득하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요 재앙 아닌가.


과학도 마찬가지다. 나도 과학자이지만, 계산을 잘한다거나 교과서적인 지식을 많이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과학적인, 그러니까 논리와 순서, 원인과 결과를 과학적으로 유추해서 검증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카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학자라 할 수 없다. 과학자는 결코 몽상가가 아니다.


즉, 한 개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모든 인간을 다 이해하지 못하며 가장 가까운 개인인 나 자신조차 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반적 인간을 이해했다는 건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자극에 반응을 하는지 등등에 대한 어떠한 일련의 (무선별적이고 무질서하지만) 패턴을 얻어낼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많고 많은 패턴으로 어떤 구체적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도움을 얻을 순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 난 훨씬 더 큰 열매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아니면 신학자들의 이름을 유식하게 나열하고 그들이 말한 명언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늘어놓으며 자뻑하는 인간들을 많이 본다. 많이 공부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지식이 책 속에만 갇힌 채 현실적인 삶에서 사유하는 능력이 없어보이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과거를 배우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를 위함이다. 과거의 커다란 지식 속에 파묻혀 죽고싶진 않다. 이런 면에서 과거는 예제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머리 속에 수백 수백 글자가 더 들어갔지만, 오늘 내가 어제 나와 똑같다면 (즉,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잔 말), 과연 그 글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나는 계속해서, 뭘 위해선지 이제 와선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책을 꽤 많이 읽어나가고 있는데, 과연 이것들이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와 다르게 만들고는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이건 믿음의 차원이지 과학적 증거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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