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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현실인 한국의 구조악: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고발/고찰하기.

정희진 저,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이 책은 비유나 상징이 아닌,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저자의 직접적인 해석과 더불어, 가부장제 문화에서 습관처럼 배제되었던 여성과 소수자의 시각을 되살려내는 과정을 통하여 기존의 ‘정상적인’ 해석의 편협함과 그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재해석 작업, 그리고 그로 인해 젠더나 성별 이슈를 넘어 인식의 모든 대상에 대한 대안적 인식론을 우리 모두가 가지기를 소원하는 저자의 한이 가득 담긴 글의 모음집이다. 실제 저자는 페미니즘을 ‘지식의 형성 과정, 권력의 작동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학문이자 실천’으로 정의하며, 여성학이나 여성주의라는 명칭조차도 생물학적 여성에게 국한된 문제로 보는 협소한 관점을 지양한다. 단지 여성의 지위를 남성의 그것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놓는 목적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자는 것이 이 책에 흐르는 저자의 주된 메시지다.

이미 치우친 배를 가운데로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동안은 일부러 반대쪽으로 치우칠 필요가 있어서였을까. 개정증보판이라지만 여전히 2019년의 시각을 만족시킬만큼 충분히 업데이트되지 못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가부장제라는 내 안의 색안경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또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안전한 유익을 여전히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무의식 때문이었을까. 일관된 관심과 집중을 가지고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기는 힘들었다. 분명한 한 가지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사례로 드는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내가 깊고 정확하게 알거나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나는 이 책을 깊이있게 공감하기엔 역량이 모자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고 둔감했던 나의 성향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기득권 세력이 내어놓은 해석에 길들여져온 나의 안이한 태도가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나의 준비되지 않은 자격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가진 색깔과 요지가 선명했음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책엔 여러 단편적인 글들이 모아져 있지만, 무작위로 아무 글이나 선택해서 읽더라도 저자의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을만큼, 저자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분명하다.

한편, 저자는 다양한 여성폭력을 다루는 데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만 강조하면서 여성의 비참한 현실과 남성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힌다. 또한 그 문제들에 대해 대책을 논할 생각도 없다고 밝힌다. 다만, 한국 사회의 시각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명의 독자로서 내가 느낀 저자의 스탠스는 충분히 여성이 당하는 모든 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로 인해 여성이 여태까지 당해왔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과, 가해자인 남성의 비인간적인 습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저자의 주된 비판이 실제론 이러한 폭로의 향연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 여러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사건 폭로에 정신을 빼앗기느라, 저자가 원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까지는 미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참담한 뉴스를 보고 난 직후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깊이 생각해볼 만큼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한편으론, 저자가 매트릭스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도 가부장제라는, ‘정상적인’ 상황을 자처하는 매트릭스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얼마나 마음에 커다란 상처와 아쉬움을 느꼈을지, 함께 아파하는 마음도 있었다. 허나, 다른 한편으론 동일한 메시지를 여러 구체적 사례를 동원하며 많이 반복해서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에 각인된, 거의 악마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며 폭력적이고도 차별적인 체계를 가능한 모든 형용사와 수식어구를 동원하여 적나라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묘사하는 방법이 저자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또한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메시지를 그저 수평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이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혹시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는 충분한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이 책이 결국 얻어낸 건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독자들은 금새 저자의 통쾌하면서도 강한 표현에 면역이 되어 저자가 주장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진 않았을까, 등등의 여러 의문까지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생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번 쯤은 꼭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정치사회적인 이슈에 둔감하거나, 그래서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픈 진실들을 습관처럼 놓치며 살고 있는, 가부장적 남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 나처럼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작품에서 인간에 내재된 폭력과 악의 모습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어찌 할꼬?’ 하며 마음이 아파 가슴을 치는 부류의 사람들은 이 책이 결코 문학책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적나라한 현실보고서와 그 이면의 시선들을 발견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것들을 포괄하는 체제의 부조리 등이 궁금한 이들에겐 서슴없이 추천할 책이다. 호흡이 가빠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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