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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상대성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9. 7. 04:35

상대성.

무언가를 막 끝냈을 때에만 찾아오는 독특한 무료함이 있다. 하릴없이 빈둥댈 때와는 다른. 뭐랄까. 관성의 잔상이랄까. 한동안 계속해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린 물체는 여태껏 멈춰있던 물체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과거의 흔적은 현재 정지한 물체의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기 마련이다.멈춤이라고 해서 다 같은 멈춤이 아니다. 멈춤에도 맥락이 있다. 멈춤의 미분계수. 그 멈춤 이후에 상승할지 하강할지 알 수 있는 값. 멈춤의 순간기울기. 이는 현재의 순간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궤적과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결코 시간은 불연속적이지 않다.

움직임은 외부에서 그 물체를 보는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외부의 관점이란 다른 물체와의 비교에서 기인한다. 즉 상대적인 평가인 셈이다. 그 물체가 아닌 다른 물체가 존재해야만 그 물체의 운동성을 말할 수 있다. 자기자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는 타자의 움직임과 멈춤 현상이 전제될 때에만 알 수 있다. 움직임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멈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멈춘 물체가 움직이는 배를 타고 있다고 치자. 만약 그 물체의 좌표를 외부에서 추적하고 있다면, 그 물체의 좌표가 실시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추적자는 분명 그 물체가 움직인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물체의 진술을 들어보면 분명 자신은 멈춰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즉, 멈춤이라는 것 역시 언제나 자타가 공인하는 현상은 아닌 셈이다. 멈춤도 상대적이다.

인간의 한계이자 숙명인 것은 모두가 이러한 상대성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이 상대성이란 시스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100% 자명하게 객관적인 판단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주관성과 다양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시스템 안에 거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지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이면 좋겠다. 경솔하게, 마치 자신이 시스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인 것처럼 여기며 함부로 지껄여대는 족속엔 적어도 속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러한 점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만 지적해대는 위선은 굳이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더라도 적어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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