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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오랜만에 불청객인 두통이 찾아왔다. 좀 더 누워있다보니 출근시간도 놓쳐버렸다. 5분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초점을 맞추려 인상을 쓰며 시계를 쳐다보는 것도 벌써 몇 번째인지. 그러다 어느새 또 잠이 들었었나보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마음에 무거운 몸을 거실로 옮겼다. 그런데 환한 여름과도 같은 날씨가 나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이 시간까지 집에서 늑장 피운 적이 없어서, 평일날 오전이 선사해주는 독특한 한가로움이 이렇게도 묘한 기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일찍 조퇴하고 집에 왔을 때 느끼던 그 낯선 기분에 비교할 수 있으려나.
더위가 느껴졌다. 꿈인가 하여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벌써 바깥 온도는 화씨 89도였다. 오늘 한낮의 최고기온은 90도를 넘긴다고 한다. 11월 중순, 두통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과도 같은 이 여름 같은 늦가을 아침. 난 이럴 때마다 내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낯섦의 느낌은 낯익도록 익숙해진 자리를 언제나 새로움으로 옷입힌다.
덕분에 지끈거리는 머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만은 푸근해졌다. 언제나 아침에 혼자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나를 맨처음 반기는 건 적막한 냉기와 그 속을 가득 채운 외로움이었다. 아들의 방은 굳게 닫혀 있고, 아침마다 나보다 먼저 서두르던 아내의 소란스러움도 사라졌다. 차분하고 고요한 집안은 자유가 아닌 쓸쓸함이 짙게 배여있다. 몸이 아플 때면 이런 은근한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안 되겠다 싶어 진통제를 몇 개 삼키고 다시 침대로 향한다. 다행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없다. 오전만 이러고 있자고 스스로와 타협한다.
다시 눈을 뜨니 다행히 손님을 떠났다.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상대이고 한 번 찾아오면 방문 기간이 최소 몇 시간은 소요되기에 난 이 불청객이 영원히 나를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불청객이 언젠가 또 나를 불쑥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내 몸과 마음을 그대로 내어줘야 할 것이다. 환멸하는 마음이 드는 상대를 이렇게 환대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가 참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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