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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민감해지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20. 06:07

민감해지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랑의 공백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그 사람의 흔적과 기억으로 선명해진다. 옷장을 열면 금방이라도 그 사람의 냄새가 날 것 같은 오래된 옷가지들이, 신발장을 열면 그 사람이 신던 굽이 닳고 먼지가 묻어 낡은 신발이, 이불장을 열면 함께 덮던 따스한 이불이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공간의 흔적을 나타내고 함께 한 기억들을 말없이 소환해낸다.

무심코 넘어가던 순간도 울적한 날이면 예민해지는 법이다. 혼자임을 체감하는 혼자 있는 시간에 벽시계의 초침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럴때면 작은 파동에도 나는 또 무너지곤 한다. 이성보다도 빠른 이 기분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느 한 물건에만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다시 전혀 예상할수 없는 순간에 불쑥 찾아와 나를 또 무너뜨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헤어짐이 이런 일상의 작은 조각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기억의 통로를 열어젖힐 줄은 미처 몰랐다.

한편으론, 난 또 이런 생각도 한다. 이렇게 떨어져있는 기간만이 아니라, 함께 하면서도 이런 통로들에 민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 보다 풍성한 사랑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사는 사람이 여유있는 눈과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대하는 것처럼,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그렇게 맞이한다면, 좀 더 후회없이 모두 내어주며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남은 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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