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에서 이탈한 자내 안엔 두 자아가 있다. 하나는 궤도에 진입하려 애쓰는 자아이고, 나머지 하나는 궤도에서 이탈하려고 애쓰는 자아다. 두 자아는 대립한다. 대립하면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발현되는 자아는 오직 하나여야 하므로. 궤도에 진입하려는 자아는 정착을 추구하고 주류를 지향하는, 소위 ‘잘 되는 나’를 바랐다. 반면,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자아는 떠남을 추구하고 소수를 지향하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을 바랐다. 인생의 전반전에 두 자아 사이에는 끊임없는 다툼, 아니 전투가 치열했다. 잘 되는 나를 추구하는 자아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자아에게 늘 승리해야 했고, 심판자에 자리에 앉은 나는 언제나 그 손을 들어줘야 했다. 그래야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 혹은 출세의 길에 들어설 수 ..

깊고 풍성한 삶이 책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나서다. 신형철은 무려 이 책을 인생 책이라고 소개했다. 인생 책이라는 표현을 딱히 맘에 들어하진 않지만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리 거부할 이유도 없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출간된 게 2018년이고, 내가 독서모임과 함께 읽은 건 2019년이니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때부터 보관함에 담겨 있었는데, 중고로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내 기억으론 단 한 번도 구매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교보문고에서 신형철의 해제가 붙은 이 책이 다시 발간된 것이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는 이 책을 선구매했고 주말에 배달된 택배를 오늘 아침에 들뜬 마음으로 뜯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나..
흔적 주워 담기기억에 남는 삶. 내가 인생의 후반전에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다.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날 무렵이었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그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일상에 흩어진 행복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주워 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건 글쓰기였다. 그렇게 글쓰기가 내 삶 깊숙이 들어왔다.글쓰기는 흔적을 주워 담는 일이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것들을 텍스트로 잡아놓는 일이다. 이 일은 나에게 하나의 사명이 되었고, 나는 그 당시 기꺼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적어도 내 인생의 서기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내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은 선물처럼 ..
책장 정리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했다. 꽂힌 책들 앞쪽에 잡다한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정작 그 물건 뒤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책을 볼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책장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과감히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치우고 다시 책들이 얼굴을 드러내게 해 주기로 했던 것이다. 늘 하던 대로 읽은 책들은 옆으로 눕히고, 읽지 않은 책들은 세워 놓았다. 다행히 아직까진 눕힌 책이 세운 책보다 많다. 7:3 정도로 유지하려고 하지만, 6:4 정도로 비율이 내려간 것 같다.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 여전히 내 보관함은 수십 권의 책들로 차 있고, 질 좋은 중고로 나오는 대로 사들이고 있는데, 당분간은, 쉽진 않겠지만, 자제해야겠다. 읽고 쓰는 행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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