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적 독서독서는 공감각적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읽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내기도 한다. 나는 책만 읽는 게 아닌 것이다. 나와 책이 있는 시공간도 읽는다. 뿐만 아니다. 나만 읽는 게 아니다. 이 시공간도 나와 함께 책을 읽는다. 공감각적인 독서는 독서의 지경을 넓힐 뿐 아니라 깊이와 풍성함을 더하며 전환의 효과를 낸다.내가 사는 구축 아파트 뒷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한남대 둘레길을 조금 걷다 보면 한남대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사진에 담은 이곳은 내가 자주 찾는 장소이다. 여기서 나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장소가 누구에게나 한 군데 쯤은 있지 않을까. 비밀도 아니고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이 ..
돌아보니아침마다 차를 타고 정뭄을 통과했지만 몰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정문 쪽으로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보였다. 내가 지나온 길 양 옆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완연한 가을이 이미 내 일상을 깊숙히 침투한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속리산 법주사 근처를 두 시간 정도 영천에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거닐며 이제 막 진입한 가을을 즐겼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올해도 잠시 왔다가 알아채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가을을 느끼지 못할 뻔했다.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좋은 곳을 다니는 횟수가 줄어들기 마련인가 보다. 어떻게든 가족과 다시 합치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묘연하기만 하다. 나이 오십이 다 되었는데 당장 코앞에 놓인 미래도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
정착과 떠남의 경계에서줌파 라히리 저, '내가 있는 곳'을 읽고줌파 라히리가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던 시절 썼던 세 번째 책이다. 첫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두 번째 책 '책이 입은 옷'이 산문집이었다면, 이 책 '내가 있는 곳'은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뒤로 물러나 있다. 이탈리아어에 조금 자신이 붙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소설가로서 이탈리아어 소설 한 편을 꼭 써보고 싶기 때문이었을까? 형식은 달라졌고, 화자 뒤에 숨어 목소리를 아꼈지만, 세 번째 책인 이 소설에서도 앞의 두 산문에서 보였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은 그대로 이어진다. 이 책은 46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묘..
익명성으로 숨길 수 없는 정체성줌파 라히리 저, '책이 입은 옷'을 읽고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도 벵골 출신이자 미국 이민자로서 평생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2012년, 그녀는 돌연 이탈리아 로마에서 2년간 거주하며 벵골어도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삶을 선택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어로 탄생한 그녀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 '책이 입은 옷'은 말 그대로 책의 표지를 뜻하지만 단순히 표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옷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으로 이민 후 다른 미국 아이들처럼 보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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