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와 중심어제부터 다시 읽고 쓰기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부조리의 끝판왕인 한 인간 때문에 기존의 가치체계마저 흔들릴 것 같은 근원적인 불안이 그나마 해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다양성으로 인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어떤 공통된 선이 지켜질 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로 인해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상대주의를 배격하고 근본 없는 다원주의도 반대한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는 옹졸함도 잘못된 것이지만 틀린 것을 다르다고 하는 짓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전자는 가부장제나 갑질 권력의 연장선으로 읽을 수 있다. 후자는 비열한 짓일 뿐이다. 자기 안에 갇혀 망상에 사로잡힌 자의 최후의 표현형을 나는 목도할 수 있었다. 더디지만 희망을 잃..
우물을 깨부수는 책책은 도끼여야 한다. 어느새 갇혀버린 내 안의 우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하도록 만들어주는 통로로써의 역할을 책은 충실히 담당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책의 이런 순기능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독서가들은 안주할 수밖에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책은 도끼이지만 여전히 독서가 중엔 책을 우물 탈출용이 아니라 안주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주형 독서가들에게 책은 감성팔이나 뻔한 위로 정도의 가벼운 환각제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인식의 우물을 더욱 견고히 만들고 그 안에서 왕 노릇하게 만든다. 이들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나름대로 선별해서 읽는다는 것이, 자기는 머리가 나쁘다든지 공부를 못했다든지 하는 어설픈 겸손..
인간스럽지 않고 인간답게안주하는 자의 부지런함은 벽과 같은 우물을 더 견고하게 해서 세상으로 만들고 자기를 가두고 남까지 가두는 재앙을 가져온다. 깨어 있지 않으면 휩쓸리게 된다. 분별하지 못하는 자는 선동당할 뿐이다. 게다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유익에 따라 선과 악을 취하기 마련인데,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게 선악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서 비밀스러운 ‘자유‘를 느끼고 희열 한다. 선동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세상이 된 우물은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혀 우월감에 젖은 짐승이 사육되는 곳으로 전락하게 된다. 시간문제다. 선동당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고 싶은 자는 ‘공부’ 해야 한다. 학창 시절의 학점 받기 위한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객관화를 이..
관념과 몽상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여주인‘을 읽고금세 바닥날까 두려워 아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 하나를 조심스레 까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 내겐 슬픈 일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단편까지 포함하여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개수는, 내가 파악하기로는, 모두 서른다섯인데, 이번에 읽은 ‘여주인’을 빼면 이제 네 작품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문호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성취감이 남모를 아쉬움으로 변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내가 선별한 총 열다섯 편의 대표작을 재독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곧 맞닥뜨릴 상실로 인한 슬픔, 즉 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사라질 시기를 늦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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