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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이 가진 힘.
옛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공간에 대한 사진 같은 기억. 몇 년 전 살던 아파트 안이다. 인디애나주 피셔스라는 도시에 위치한 원 베드룸 아파트. 아들과 단 둘이 살던 1년 6개월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곳.
시작은 창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내 기억은 방바닥을 덮고 있던 연한 갈색의 카페트를 거쳐 거실로 옮겨가 아파트 내부 구조를 비추었다. 식탁이 있던 자리, 텔레비전이 있던 자리, 그리고 세탁기를 놓을 수 있었던 공간, 아파트 크기에 비해 유난히도 컸던 화장실까지 내 기억은 하나씩 차근차근 모두 되살려냈다. 소파가 없던 거실에는 누가 쓰다버린 의자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나는 또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다. 바로 가까이에 6살의 아들 녀석은 혼자서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다. 아들의 뒤통수가 보인다. 갑자기 서러워진다. 눈물이 난다.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었던 그 공간엔 언제나 아들의 뒤통수가 보인다.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도 금전적인 이유와 제한된 24시간이란 시간과 나의 체력을 난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의식처럼 진행되었던 베드타임스토리 시간, 어느새 곤히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북받쳐 오르는 심정으로 조용히 눈물을 삼켰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기억이란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은 것. 뜬금없이 찾아와 나를 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듯 사라져간다. 너무도 사소해서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들. 하지만 늘 내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들. 생명도 없고 무미건조한 일상의 조각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이 가진 힘을 안다. 어느 날 갑자기 슬픔의 문을 확 열어젖히는 손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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