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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의 의미, 그리고 타자의 존재.
생각하는 주체인 ‘나’를 살려내며 근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의 존재만으로는 ‘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전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닌 타자를 살려내는 것. 그 타자 역시 또 다른 ‘나’, 즉 나와 다르지만 나와 동등한 주체이면서 존재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뿐만이 아닌 타자를 살려내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 바로 인간의 삶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해서 결국 다다른 것이 ‘생각하고 있는 나’였지만, 그 ‘나’라는 존재자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건 타자의 존재 때문이다. 타자는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나’는 타자로부터 의미를 찾는다. 나와 타자는 분리되어 있지만 분리되어선 안 된다. 서로의 존재가 없으면 그 누구도 온전할 수 없다.
의미 없는 존재자가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마침내 살려낸 주체의 의미가 ‘나’의 존재만이 아닌 타자의 존재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화합과 온전함의 관점으로 해석해본다. 그렇게 되면, 자기애에 심취한 자는 온전할 수 없다. 이기심은 불완전함을 상징할 뿐이다. 겸손은 나와 다르지만 나와 동등한 존재자인 타자의 존재를 비로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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