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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가사만 남은 노래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6. 19. 11:02

가사만 남은 노래.

여러 분들이 격려해주신 덕분인지, 간만에 깊은 잠을 잤다. 모자랐던 잠이 다 채워진 기분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깊은 잠에서 깰 때의 기분은 얕은 잠에서 깰 때의 기분과 사뭇 다르다. 멀리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무의식 세계의 바닥을 짚고 온 기분이랄까. 짧고 깊은 낮잠을 자고 났을 때 느껴지는 어벙벙한 기분과도 같고, 마치 시간을 건너 뛴 것처럼, 잠을 잤다기보단 의식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한 것 같다.

편도 45-60분 정도의 거리를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처음엔 구글맵의 지시를 받으며 길을 찾았지만, 이젠 그것도 필요 없어졌다. 다 외워버렸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따라가는 것은 아무래도 내 체질과는 잘 맞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직도 삐딱한 그 무언가가 살아있다. 나이가 들면서 부드러워진 면도 있지만, 이 삐딱한 천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가면서 한국 가요를 들었다. 감성적인 노래들. 여전히 사랑과 이별은 대부분의 노래의 중심주제가 된다. 여러 드라마의 OST로 사용되었던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선 드라마를 보면서 노래를 듣던 사람들에 비해 공감도가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아이는 감정이 동하고 마음 문이 열린다. 서정적인 멜로디만이 아니다. 노래 부르는 이들의 음색과 표현력이 예전에 가요를 한창 듣던 90년대보다 월등히 발전한 것 같았다. 한 가지 재미난 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대부분 20대 언저리의 청년들이 많다는 점이다.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도, 사랑과 인생이 어떤 쓴맛을 머금고 있는지도 모를 만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저렇게 절절하게, 마치 직접 경험해 본 것처럼, 마치 정말 아파해 본 것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공감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나로선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소리는 이성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부르는 이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어도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팔 수 있는 힘. 사람의 목소리.

그러나 음악과는 달리 글은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책상 앞에 앉아 공상으로 써대는 글이나, 편안하고 여유있고 화려한 장소에서 살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가득 채워진 글은 아무래도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지 못할 것 같다. 글에는 멜로디도 악기 소리도 음색도 없다. 아무리 좋은 가사를 가진 노래라도 이런 것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노래가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글은 가사만 남은 노래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쏟아져나온 현장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얄팍한 감성팔이의 글이나 현실과는 무관한 교과서적인 이론적 깨달음으로 도배된 글은 읽는 이에게 금방 들통이 나서 폐기처분되어 버리지 않을까 싶다. 읽고 나서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책은 사양한다. 그것은 공해에 불과하다.

좋은 문장도 좋지만, 굳이 좋은 문장이 없어도 그 글이 토해져나온 현장의 생생함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난 그 글은 충분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처럼 말이다. 개별적이고 사소한 경험인 것 같지만,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글. 개별성 안에 숨은 보편성을 터치하여 글로 번역해 내는 일. 내가 원하는 작가의 글이다. 언젠간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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