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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즐김과 책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8. 26. 06:02

즐김과 책임.


책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나날이다.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건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즐겨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앞을 좀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즐기는 날보다 견뎌야만 하는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고 한 번 뿐이니 즐기라는 말. 내뱉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가정을 가지거나 어떤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의 경우,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가족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인생을 즐긴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즐김은 소외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즐기라는 말을 쉽게 내뱉곤 하는 자들을 보면 보통 세상의 피라미드 위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하고 일이 대체적으로 잘 풀리며 그다지 생계에 지장 없이 사는 여유있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삐딱하길 좋아하는 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분히 책상에서, 혹은 뜨끈한 안방에서 나온 죽은 사유의 열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생 예찬을 그런 작자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인생을 즐기라느니, 견딤을 즐기라느니,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느니, 따위의 말은 듣기 거북하다. 충고는 관두고 그 시간에 스스로 맘껏 즐기고 그 즐김을 제발 좀 나눠주면 좋겠다. 기득권을 그대로 충분히 여유있게 유지하면서도 약자들에게 바른 소리 해대는 인간들 보면 점점 구역질이 난다. 그들의 비린내나는 입냄새와 뱃살에 구겨진 비개덩어리가 보기에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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