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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길 위에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8. 16. 03:17

길 위에서.

떠날 채비를 갖추며 이별을 준비하는 자의 눈은 다른 법이다. 사소한 일상에 깃든, 희미하지만 영롱한 빛을 보게 된다. 곧 떠날 일상이 못내 아쉬워 그 안에 침잠하기도 하며, 함께 했던 이들의 숨결이 느껴질 때면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모든 순간이 그립고 모든 숨결이 고맙다.

현재에 충실하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옆에서 생각해본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치열한 하루를 보낸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곧 떠날 준비를 하며 조금은 객관적이고 조금은 관조적으로 몸담았던 일상을 넌지시 바라보며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을 음미해보는 사람. 충실함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쉽게 고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인생이 직선이 아니라 여러 겹의 곡선이며, 내림과 오름의 무한반복이 언제나 무작위로 주어지고 우린 그 안에서 견뎌내는 존재라는 걸 조금이라도 맛본 자의 머뭇거림일 것이다.

떠남과 정착의 사이클은 언제나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또 손에 가득 주어담고 있었던 것들의 가치를 재해석하게 만든다. 놓아버려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서는, 약간의 긴장 섞인 판단들과, 이걸 왜 이토록 추구해왔는지, 혹은 이게 왜 내게 중요했었는지, 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기도 하며 후회 섞인 긴 한숨을 내뱉게 된다.

멀리 보고 크게 보면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지 않을까. 세상 다 안 것처럼 중간과정 없이 인생무상을 경솔하게 외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는 끈을 한 손에 잡고, 또 한 손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라는 의미를 좀 더 치열하게 누리길 원하는 눈물 어린 소망을 부여잡는다. 난 오늘도 길 위에 있다. 앞길을 모르고 답을 모르는 채로 우두커니. 그래도 길 위에 서있을 수 있는 힘이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하다. 앞서 있거나 여유 있어서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지로서 나는 좀 더 동지들을 돕고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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