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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적 문체의 명암.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주말 내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이다. ‘어제’라는 단편소설을 통해 인상 깊게 읽었던 작가였기 때문에, 언젠가 중고서점에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구입했던 책이었다. 약 600 페이지에 달하는데, 시간을 달리하며 독립적으로 출판된 세 편의 단편소설이 한데 묶여있는 형태다. 등장인물은 물론 작품 속 시공간도 서로 겹치거나 연결되기 때문에, 이 책을 펴낸 까치 출판사가 이렇게 세 편을 각각 1, 2, 3부로 구성하여 전체가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보이도록 기획했던 의도도, 개인적으로 약간 억지스러움을 느끼긴 했으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따로 세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판매되기도 한다.

 

'어제’를 읽으면서 느꼈던 인상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졌다. 좀 더 확장되고 심화되어 있을 뿐이다. 책 뒤에 딸린 해설에서 작가는 이 작품에는 자신의 자서전적인 이야기가 소설화되어 많이 담겨있다고 쓴다. 그 자서전적인 이야기란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직접 겪어냈던 2차 세계대전, 헝가리 반체제 운동 등 동유럽 역사가 그대로 관통하는 거대 서사의 조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분위기는 전쟁 가운데 벌어진 민간인들의 참혹한 일상생활, 전쟁이 서민들에게 남긴 여러 구체적인 흔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둡고 우중충해서 염세적으로도 보이지만, 종종 해학이 적절히 뒤섞여 있어 소설 속 참혹한 삶도 나름대로 감정 소모를 덜하면서 관조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어제’를 읽으며 매력적이라 여겼던 작가의 독특하고도 드라이한 문체의 기원을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제삼자라는 인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어느 정도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지만, 작품을 되씹으며 감상문을 써야겠다는 강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은 내 안에서 깊은 공감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역시 작가의 문체 때문인 것 같다.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 즉 작품 속에서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심리학자가 되어 등장인물의 내면을 기술하는 방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을 제삼자의 눈으로 기술할 뿐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뜻밖의 섬뜩한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될 땐, 작가가 아무런 부연설명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작품 속 사건의 전후관계만으로 내용의 흐름을 눈치채가며 이해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한다. 600페이지 분량의 글을 모두 그런 식으로 읽어나가다 보니, 3부에 도달해서는 나도 뭐가 뭔지 헷갈려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 작품은 독자가 해석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유로움이 조금 지나쳐 결국 독자의 방황으로까지 자연스레 유도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1, 2, 3부는 내용이 연결되면서도 모순된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3부에 와서는 나처럼 방황하거나, 중도에 책을 덮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만의 독특한 관조적 필체가 단편일 땐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장편의 경우 오히려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물론 작가가 이 점을 당연히 알고도 일부러 그 시대의 모순된 상황과 혼란을 글의 형식과 글쓰기 필체로써 드러내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조금 아쉬운 감을 느낀다. 조금은 더 등장인물의 내면까지 들어와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랬다면, 이 작품은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더 읽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에게도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고타 크리스토프 읽기.

1. 어제: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052606641450764

2.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932687956775957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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