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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햇살의 아련함처럼.

 

오가와 요코 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

 

읽고 나면 벌써부터 여운을 남기기 시작하는 작품이 있다. 보슬비에 옷이 젖듯 가슴 한편에 조용히 의미 있는 파문을 일으켜 오래 기억될 작품이 보통 그렇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았을 때 이미 난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도 그중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이 작품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걸린 시간만큼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의 햇살이 가져다주는 그 특유한 아쉬움 같기도 했고, 어릴 적 아빠와 함께 간 공중목욕탕에서 집에 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뜨거운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열어 들어온 차가운 공기를 감지하며 닭살이 돋으면서 느꼈던 기분과도 비슷했다. 두 시간을 넘도록 적당한 표현을 생각했지만, 내가 느낀 감상을 막상 문자로 표현하려니 당황스럽게도 이 두 가지 상황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먹먹해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듯했고, ‘따뜻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성에 차진 않지만 한 단어를 골라 본다. 아련함. 그렇다. 내게 이 책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척이나 아련함을 남기는 작품이다. 작가가 만든 세상 속으로 시나브로 스며들어간 상태에서 헤어 나오기 싫어 한동안 그대로 남고 싶은 기분이 드는 작품인 것이다. 마치 이제 곧 사그라들 일요일 오후의 햇살처럼, 마치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할 아이가 느끼는 따뜻한 탕의 온기처럼,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책 속에 머물렀다.

 

교통사고 때문에 머리를 다쳐 한창 젊었던 시절 이후의 장기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린 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그에게 단기 기억이라곤 고작 80분이 전부다. 정확히 80분 전까지만 그는 기억할 수 있다. 하루도, 한 달도, 일 년도 그에겐 모두 의미가 없다. 그에게 시간은 모두 80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게 새롭다. 동시에 그 때문에 그에겐 모든 게 낯설다. 매일 마주치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리 깊은 대화를 나누고 친분을 쌓아도 다음 날 아침이면 또다시 처음 보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수학 박사다. 케임브리지까지 유학을 다녀올 정도였으니 한때 전도유망한 학자였던 것이다. 사고 후 그는 많은 걸 잃었다. 그러나 다행히 사고 이전에 그가 쌓았던 수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잃지 않았다. 그의 하루 일과는 꽤 규칙적이다. 잠자고 밥 먹는 등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일을 제외하면 그는 하루 종일 수학 문제를 풀고 생각에 잠긴다. 아주 적은 활동을 하며 허름한 집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80분밖에 안 된다면, 나 역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많은 일을 결코 벌이지 못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고가 그에게서 수학이라는 평생지기 친구까지 빼앗아 가지 않아서 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수학 문제를 풀고 생각하는 행위는 직업도 여가생활도 아니다. 숙명이다. 그리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라치면 사뭇 비장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소설의 화자는 노 박사를 돕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녀의 회고록이다. 박사가 죽고 나서 쓴 그녀의 기억이다. 24시간을 살며 기억이 온전한 사람이 80분으로 이뤄진 세상에 사는 늙은 수학 박사를 보조하는 상황, 특히 그녀가 느낄 심적인 고뇌를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을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해도 친분을 쌓을 수 없을뿐더러, 상대방의 기억 속에 전혀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고 또 허무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다행히 화자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배경을 가지고 남을 헤아리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박사 역시 다행스럽게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기억을 하지 못할 뿐 그는 아이 같이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따뜻한 가슴과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수학이라는 언어가 있다. 수와 수학이 그들 사이를 서먹하지 않게 만들어줬고, 그것들 덕분에 화자는 박사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박사가 유일하게 가진 수와 수학은 화자와 연결되는 훌륭한 언어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는 일상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엔 잔잔한 웃음이 돌면서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소설을 많아야 열 권 남짓 읽었지만, 이 작품만큼 가슴이 아련해지는 작품은 없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염세적인 뉘앙스 (이를테면, 자살, 죽음, 사별, 트라우마 등등)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선 이 작품 속에 그런 것들이 없어서 반가웠다. 비록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과 각자의 사연이 얽히고설켜서 하나의 따스한 세상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오래도록 붙잡아둘 만큼의 힘으로 말이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만큼 또 슬픈 게 있을까 생각했다. 누군가는 망각이 신이 준 선물이라는 말도 했지만, 이 소설 속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 얘기다. 소설이 끝나가면서 박사의 시간이 80분에서 점점 줄어들며 죽음으로 서서히 걸어가는 과정을 불연속적으로 지켜보면서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또한 박사는 자기가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여러 중요한 사실들을 80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기 위해 간단하게 사건, 사실들을 적은 여러 쪽지들을 옷에 덕지덕지 클립으로 고정해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도 애잔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박사의 삶의 방식을 받아주고 맞춰주는 화자의 배려와 사랑이 너무 고마웠다. 

 

제목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지만, 내게 남은 잔상에는 박사보다는 가사도우미가 더 크다. 물론 저자 오가와 요코의 필력이겠지만, 내겐 박사의 기막힌 사연보다는 가사도우미가 박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상황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부분들이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녀가 행한 일상적 배려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감동이 나에게 애잔함과 따스함을 잔상으로 남긴 실체가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누군가가 살아나는 장면은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다. 그런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공감과 이해와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말이다. 문득 나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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