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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킨다는 것: 신뢰와 감사.
며칠 전 아이가 아파서 잠든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나에게도 지킬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했다. 아이가 많이 아팠던 십이 년 전에도 그랬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신기하게도 아이가 잠들면 비로소 감사가 회복되곤 했다. 누군가가 나를 의지한다는 것, 그 의지하는 자가 무방비 상태로 내 앞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 곧 나를 믿고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미련한 나는 밤이 되어서야 알았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먼저 받은 믿음과 신뢰에 대한 책임이다.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낮에는 한없이 무겁던 그 책임감도 밤이 되면 감사함이 깃든다. 그래서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나는 지켰을 뿐인데 아이는 나를 먼저 믿고 의지하고 신뢰했던 것이다. 낮 동안의 번잡함 때문에, 내 안에 가득 찬 나 때문에 나는 자꾸만 순서를 반대로 생각했었다. 그러니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깨달았다. 하루 종일 나는 아이로부터, 한 사람으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았다는 것을. 나는 그에 대한 감사로, 은혜를 갚은 심정으로 아이를 지켰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당연한 걸 생색내곤 했던 못난 놈이었다. 아,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전적인 신뢰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부모로서의 깊은 감사는 전적인 신뢰를 받아 보았다는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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