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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위로: 방식 혹은 마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5. 9. 03:36

위로: 방식 혹은 마음.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때, “기운 내. 넌 할 수 있어. 다시 일어나!” 하고 용기를 자극하며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휴. 힘들지?”라고 하면서 함께 구렁텅이의 바닥까지 내려가 주는 사람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출판된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기반한 대중서들에 따르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바람직한 위로자다. 이런 분석이 독자들의 공감을 많이 사는 이유 한 가지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가 아닌 전자의 방식으로 교육받아왔고, 또 그런 식으로 대접받고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의 방식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해봤거나, 오히려 추가적인 상처를 받아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든 경험이 부정적인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분석과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이런 동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 묻고 싶다. 그것이 단지 표현방식의 차이에 국한된 것이라면 후자 역시 공허한 메아리로 울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사람이 후자의 방식을 따라 나를 위로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너무도 판에 박힌듯한 (아마도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리라) 대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은 마치 자기가 전자가 아닌 후자의 방식을 따르는 위로자라는 사실에 만족해있는 것 같았고, 나를 위로하는 목적이 아닌 자신의 세련된 혹은 진화한 위로 방식을 시연하고자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전 전자의 방식으로 겁 없이 위로를 건네던 사람들이 주는 인상보다 오히려 더 가소롭게 느껴졌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전자의 방식이 비추되고 있는 이유는 보편적인 해결방법을 개별적인 상황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려는 무언의 폭력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서 좀처럼 진심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도 뻔히 다 아는 이야기를 해대며 마치 절망에 빠진 이유가 그 사람 잘못이라는 식으로 책망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방식에서도 이러한 이유가 고스란히 반복된다면, 아무리 표현방식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그 위로의 말을 듣는 입장에선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이 생각을 조금 뒤집어보면, 전자의 표현방식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무언의 폭력성이 제거되어 있다면, 책망의 뉘앙스가 사라져 있다면, 그 방식도 충분히 훌륭한 위로의 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를 진정으로 위한다는 느낌을 감추지 못한 채 나에게 다가와 내 두 눈을 보며 전자의 표현방식으로 말을 건넨 친구 덕분에 위로를 받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는 후자의 방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어서 심리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위로는 표현방식 운운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건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공부로 좀 더 세련된 표현방식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진정성은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 마음은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을 위로한다는 건 마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가 아닌 후자의 표현방식을 아는 상황이라면 이를 잘 활용하여 어이없이 추가적인 상처를 주는 일을 줄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세련된 표현방식에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공허할 뿐이다.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 깊이 공감하는 마음,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어떤 말도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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