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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서 저항하기 위하여.


델핀 미누이 저,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그랬다. 이 함축적인 하나의 문장이 책의 거의 전부를 담고 있었다. 나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현실에서 있을법하지 않은 일이 공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의 울림. 제삼자의 입장에서 고작 인터넷 뉴스 기사 몇 편으로 시리아 내전의 참혹함을 대충 주워들은 나는 이 책이 주는 무게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 같다. 더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함이 송구스럽기만 하다.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델핀 미누이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시리아 젊은이들의 몸짓을 향해 감히 ‘매력적인 저항’이라고 표현했다. 총과 폭탄을 앞세운 폭력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져 가는 시공간. 그 시공간의 지하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책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좌표를 바로 알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그들의 조용한 몸짓. 그들의 삶은 조용하지만 묵직했다. 제한되었지만 갇히지 않았고 오히려 무한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폭력에 피하고 숨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두려움과 현실과 무지에 저항했다. 


그들의 이러한 몸부림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들이 마침내 현실감각을 잃고 몽상을 갈구한다고 함부로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두꺼운 역사책과 시와 소설이 담긴 문학책 등을 그 참혹한 폐허 가운데 읽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어제는 앞집 아저씨가 총에 맞아 죽었고, 오늘은 옆집이 폭탄에 맞아 가족 모두가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당신은 과연 숨어서 뉴스를 읽을 것인지, 아니면 역사와 문학을 읽을 것인지. 죽음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와있는 상황에서 현실감각을 키운다고 뉴스를 한 자라도 더 보는 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과거에 그 지옥과도 같은 비슷한 현실을 살아내고 이겨낸 사람들의 실화가 담긴 역사나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가 깊이 투영된 문학작품, 소망의 메시지를 담은 시와 소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시사에 능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살 만하니까,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가거나 무미건조한 삶 위에서 부유할까 염려가 되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현실에 눈을 제대로 뜨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라야 지하에서 연명하던 사람들의 상황처럼 이미 현실에 눈을 뜨고 말고 할 정도를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도 과연 그 논리가 유용할까. 오히려 저 너머를 꿈꾸거나 삶의 끝까지 간 사람처럼 회한에 잠긴 채로 머물지 않고 아이처럼 새롭게 꿈을 꾸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처절한 현실에서 평화와 자유를 소망하는 방법에는 신문이 아니라 책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현실감각보다는 우선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다라야를 무사히 벗어나서 새로운 삶의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들이 침몰하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들이 만들고 누렸던 지하 비밀 도서관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폭력이 가져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침몰되지 않기 위하여, 참혹한 현실에서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잠들지 않고 깨어서 저항하기 위하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고통당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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