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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을 겸비한 섬세함과 담백함.

미야모토 테루 저, ‘생의 실루엣’을 읽고.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읽은 지 거의 반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 작품에서 그려낸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아무래도 사람의 뒷모습은 잔상이 오래가는 것 같다. 앞모습보다 언제나 더 외롭고 쓸쓸하다. 연민이 솟아오르고, 왠지 다정해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난다.

어떻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상의 빛’을 읽을 때나 읽고 나서나 지금까지 나는 미야모토 테루가 여자인 줄 알았다. 물론 소설만 보고서는 저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별해내는 게 항상 100퍼센트 정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작품을 읽고 나면 대충은 감이 오는 편인데, 유독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만은 내가 100퍼센트 잘못짚었던 것이다. 이번에 ‘생의 실루엣’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미야모토 테루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환상의 빛’의 화자가 환상의 빛을 쫓아 죽음으로 걸어갔던 남편의 뒷모습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자라서 그랬나 보다, 하며 나름대로 나 스스로를 납득시켜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에 앙금으로 남는다. 어떻게 남자가 이런 서정성을 겸비한 섬세함과 담백함을 표현해낼 수 있는지 아직도 나는 꿈을 덜 깬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나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어쩌면 나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하는.

에세이는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시선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르다.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시공간이 매개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작가의 눈과 귀에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좋은 에세이란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묵직한 울림을 주는 보편적인 통찰을 선보이는 글이다. 자칫 놓치거나 무심코 흘려버리기 쉬운 것들 가운데엔 언제나 소중한 것들이 들어있는 법이다. 에세이 작가는 이러한 소중한 일상의 조각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주워 담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글로 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을 땐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작가와 동행한다는 심정으로 천천히 진도를 나가는 게 좋다. 서두르게 되면 자신의 일상에서도 놓쳤던 그 소중함 들을 에세이 안에서도 똑같이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이 요즘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나도 몰래 인정하고 있었던, 에세이 작가로서의 여성의 우월성도 어쩌면 한낱 편견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봄날의책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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