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우물 안 평화주의자의 겸손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6. 26. 11:37

우물 안 평화주의자의 겸손.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를 추구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그 사람의 진실로부터 더욱 멀어질 수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존재의 자유도를 인지한 뒤, 그에 맞춰 해석하는 일밖엔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행동양식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행위는 그러므로 대부분 틀릴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왜 이번엔 다르게 행동하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쩌면 잘못된 가정에서 기인한 엉뚱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으로는 이미 다 판단해놓고 입 밖으로 말만 꺼내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상하다 혹은 비정상적이다, 라는 판단이 들 때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 이상한 것도 비정상인 것도 아닐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다양성, 풍성함, 조화로움은 획일된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우물 안 평화주의자에게 있어 이단적이고 금기된 그 무엇일 테지만,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행동은 아마도 자신의 평화로운 좁은 우물을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우물 안에서의 겸손은 그 우물 안에서만 작동할 기회를 가진다. 그러나 우물이라는 개념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여전히 그런 겸손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인격적으로 그리 겸손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 못나 보여도 되니 제발 다양성의 존재를 인정이나 하면 좋겠다. 어쩌면 그게 이 시대의 겸손일지도 모르니까.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세의 명암  (2) 2021.07.02
과학자의 신앙공부 세종도서 선정 (with 스티커)  (0) 2021.06.30
두 번째 책의 윤곽  (0) 2021.06.24
예기치 못한 기쁨  (2) 2021.06.22
가짜의 가벼움  (0) 2021.05.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