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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의 명암.
이른 나이에 피라미드 상층부로 진입한 사람들, 소위 출세한 사람들을 우린 부러워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하며 자녀들도 그 길로 걷길 은근히 기대한다. 그것은 성공 중 성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도 보고 한국과 미국이란 곳에서 엘리트로 출세한 사람들을 꽤 많이 경험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었다. 지금은 전혀 부러워하지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내 아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출세를 한 사람은 능력이 출중하다기보다는 아주 드문 기회에 몸을 잘 실은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자신은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기대 이상의 성공 속도에 어안이 벙벙할 초기에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인정했을 테지만 점점 그 생각은 사라지고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세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출세한 뒤 인터뷰 같은 데서 거짓 겸양으로 인정하는 것은 제외하도록 한다), 자신의 소위 노하우라는 것을 다시 똑같이 반복한다 해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출세를 거머쥘 순 없을 것이다. 적당한 능력에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타이밍, 그리고 어떤 사람과의 기막힌 만남. 이 세 박자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절묘하게 맞춰진다는 건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전무후무한 기적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출세는 능력과도 운과도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들 간의 기똥찬 조합,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의 산물인 것이다.
일찍 출세한 사람의 명암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소위 실패라는 경험으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보통 남들이 여러 차례 시도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단 한 차례 혹은 두 차례 정도만으로 덜컥 얻어버린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래서 단기간에 아주 높은 곳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찾아온다. 명암의 뚜렷한 대비는 자리가 높을수록 심화되는 법이다. 낮은 곳엔 그림자도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보통 빨리 출세한 사람은 소위 리더나 보스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관리하거나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은 주로 평범하고 나이가 자기와 비슷하거나 자기보다 많은 사람들이다. 즉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겨우 뭔가 하나를 성취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 말이다. 갈등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짧은 시간에 아주 효율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느라 실패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의 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수나 시행착오를 좀처럼 용납하지 못한다. 특히 조금 여유가 없을 때면 인내심이 금세 바닥나서 비난하기에 발 빠르다. 멍청하다느니 노력을 하지 않는다느니 게으르다느니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개돼지로 전락시켜 버린다. 사실 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패자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밖에는 없다. 그건 똑똑하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은 한두 번만 겪어도 치를 떨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작자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장 억울하고 답답한 것은 소통의 부재와 객관적이지 않은 비난이다. 높은 곳에 앉아 품위 있게 교과서를 읊어대는 이들에겐 그 어느 것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론이 곧 실제이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자기가 그랬듯 열심히 하면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자기는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모순, 이론과 실제의 괴리, 소통과 공감의 부재는 언제나 일찍 출세한 리더 혹은 보스를 따라다니는 망령이다.
이런 작자들도 내가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한 부류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 버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충분히 돈과 지위가 확보되어 있어서 언제든 부하 직원들을 갈아치울 수 있다. 자기 빼고 모든 사람은 대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유명세와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은밀한 출세를 꿈꾸는 자들은 이들에게 오고 싶어 줄을 서 있다. 그래서 맘에 안 들면 자르고 또 뽑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을 기계의 부품 다루듯 하는 인간들인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나름 처세술을 익혀나가는 사람들이다. 거짓 겸손과 거짓 친절 등을 몸소 시연하며 배우라고 해도 될 만큼 연기력을 연마한다. 너무 친절하고 기분 좋게 얘기하다가 덜컥 마지막 문장으로 “그런데 말이야. 다음 달부턴 자네를 더 이상 지원해주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네.” 하고 말하며 끝까지 품위를 유지해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첫 번째 부류가 다소 공격적인 투사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부류는 양을 탈을 쓴 채 한 발 물러난 냉혈한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타일은 좀 달라도 공통점은 명확하다. 공감과 소통의 부재, 자기 주관에 함몰된 사상, 곧 나르시시즘.
내가 경험한 소위 성공 혹은 출세를 한 사람의 대부분이 이런 작자들이었는데, 그럴 거면 뭐하러 성공 출세를 하나 싶다. 나도 그들처럼 저 높은 곳을 꿈꿨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구원받은 기분이다. 그렇게 돈과 지위를 얻고도 결국 자기 안에 갇히고 마는 가소로운 사람들. 세상 논리가 자본과 힘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어느 정도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들에게 그것 말고 달리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까지 든다. 높은 곳, 화려한 곳엔 적어도 내가 찾는 답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런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받은 것을 다시 한번 감사한다.
- 직장에서 치이고 온 후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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