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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현대인의 삶


요시다 슈이치 저, ‘파크 라이프’를 읽고


사소한 일상을 덤덤하게, 그러나 진부하지 않게 그려나가면서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에세이 같은 소설. 섣불리 어떤 교훈을 던져주려 하지도 않고, 인간의 내면이나 사회의 부조리 등과 같은 굵직한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적당한 수위를 유지하며 인물과 배경의 내면과 외면을, 자칫 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필체로 묘사해나갈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 이상하게도 나는 주인공과 동행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고, 그가 보는 것과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남자라는 사실 빼곤 나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나’는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고 은둔형도 아닌, 어쩌면 평범한 현대 도시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인물이다. 나이가 얼추 들었지만 여전히 싱글이며, 보아하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싱글일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영업 사원으로서 늘 히비야 공원 안에 있는 같은 벤치에 앉아 혼자 점심을 먹는다. 어느 장소나 자주 가게 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늘 비슷한 시간이라는 조건까지 갖춰지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눈에 익게 되고,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연결망이 형성된다. 서로 남이지만 남이 아닌, 낯선 사람이지만 낯설지 않고 익숙한 사람으로 서로에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 사람이 안 보이는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는 혼자만의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이로 어느샌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제목 ‘파크 라이프’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점을 내포하지 않을까 싶다. 모르지만 알고, 이웃이 아니지만 이웃인 관계로 서로 얽히고설킨 삶이 펼쳐지는 곳, 히비야 공원은 어쩌면 바로 이 세상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크 라이프’는 곧 우리 현대인의 삶인 것이다. 


커다란 공원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여럿이 함께 오거나 어쩌다가 방문한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파크 라이프를 이루는 암묵적인 연결망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연결망을 이루는 주요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혼자 그 공원을 자주 찾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치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사람, 집에 혼자 있기 적적해서 잠시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마실 나온 사람 등등. 그들은 모두 각자 고독한 삶을 외로이 살아가고, 그 삶을 그대로 짊어진 채 그 삶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공원을 찾는다. 그리곤 어느덧 보이지 않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서로 공인된 관계에서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철회할 수도 있다. 혼자만의 착각이라 치부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다. 현대인의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책임감을 따지기엔 서로가 남이고, 생경함을 말하기엔 이미 서로가 잘 아는 사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뉘앙스를 가진 인간관계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현대 인간관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내가 주인공에게 묘한 공감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노블마인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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