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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긴다는 것
무언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을 즐긴다고 할 수는 없다. 즐김은 물리적인 양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양보다 질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양도 질도 아닌, 오히려 습관의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습관은 두 층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무의식적인 측면: 그 일이 자신의 일상에 얼마나 녹아 있는지. 두 번째, 의식적인 측면: 그것을 기꺼이 선택하고 후회 없이 만족할 수 있는지. 이 두 층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발현될 때 그 습관은 비로소 즐김이 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익숙하다거나, 단순히 강한 의지를 가진다거나 해서 그 습관이 즐김이 되진 않는다는 말이다. 전자는 상투적인 일, 즉 일종의 다람쥐 쳇바퀴가 되고, 후자는 무언가 성취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전락하게 된다. 요컨대, 익숙함 가운데 늘 낯섦을 재발견하는 능동적인 행위. 이것이 바로 내가 정의하는 즐김이다.
나에겐 독서가 그렇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 한두 권 더 읽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냐는 생각, 차라리 그 시간에 더 진취적이고 (?) 생산적인 (?) 일 (이를테면 돈을 더 버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 독서를 즐기려면 이런 효율성, 유용성 같은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독서는 일의 연장선에 있을 수밖에 없고, 자유와 해방 혹은 쉼이라는 의미보다는 투자라는 의미가 주어질 뿐이다. 시험 준비를 위해 읽어대는 수천 페이지의 벽돌 책을 밤낮으로 끼고 있다고 해서 그 행위를 독서라고 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여전히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에겐 적어도 독서는 일하는 현장이 아닌 쉬는 공간이고, 시간을 재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서 해방된 시간이다.
독서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해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자유시간으로 5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강제로 누군가에게 떠밀려 2시간 독서하는 사람, 그리고 하루에 자유시간으로 단 1시간이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30분을 독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가 이 둘 중에 독서를 즐기는 사람일까? 아무래도 내 눈엔 후자로 보인다. 그렇다. ‘자발적인 의지’가 즐김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의지만으론 즐김을 판단할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심지어 잠까지 줄여가면서) 책을 읽는 행위를 결코 즐긴다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이 시간이 지나면서 즐김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절박함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절박한 사람의 심정은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진정성의 진위 여부는 절박함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증명이 된다. 절박함이 사라져 버리면 그 사람은 배터리가 나간 사람처럼, 혹은 삶을 다 산 사람처럼 모든 의욕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버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절박함이 자신이 모든 삶을 태워버릴 정도로 너무나 의욕적이라면, 결코 그 절박함은 즐김으로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 혹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긴 사람은 많은 경우 겉모습만 역전되어 있을 뿐 속은 피 묻은 피라미드를 오르는 사람과 여전히 똑같기 마련이다. 그 절박함은 결국 성공을 위한 위장된 탐욕일 뿐이다. 즐김은 탐욕과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다.
여유라고 할까. 앞서 언급했던 즐김의 정의를 다시 한번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익숙함 가운데 늘 낯섦을 재발견하는 능동적인 행위’. 익숙함과 낯섦은 이율배반적이다. 그러나 이 둘의 공존이 가능해진 상황이 바로 즐김의 상태다. 이는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행위와도 일치한다. 과거에 매여있지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땔감으로 사용하지도 않는 사람. 그렇다고 현재밖에 없는 것처럼 함부로 시간을 탕진하지도 않는 사람. 인생을 즐긴다는 건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얼마나 인생을 즐기고 있을까. 독서 말고 다른 시간 속에서도 이 즐김을 연장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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