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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2. 5. 04:42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출퇴근길 운전하는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 안팎이다. 주로 여러 유튜브 강의 영상을 들으며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동시에 졸지 않도록 애쓴다. 그런 영상들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 보면 이상하게도 끝까지 못 보거나 건너 뛰거나 해서 집중이 잘 안 된다. 반면, 출퇴근길은 적당히 산만하고 적당히 집중할 수 있는데다가 운전 중엔 건너 뛰거나 되돌려 보거나 하는 행위들을 거의 할 수 없기 때문에 반은 수동적으로 반은 능동적으로 강의에 집중할 수 있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철학 강의나 석학들의 인문학, 문학 강의 등을 그동안 수백 편을 봤다.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강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때 그 순간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의 지경을 넓히고 깊게 하는 질료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결국엔 그런 것들이 사람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아주 느리게 아주 조금씩, 알아채지 못하게.


어제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언제나 유레카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편인 것 같다. 마땅한 강의를 찾지 못했고 보스와의 3시간 미팅으로 진이 빠진 상황이라 어제 퇴근 길엔 옛날에 듣던 한국 가요를 들었다. 윤상의 Insensible 앨범은 그 당시에도 충격적이었는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그 곡들이 주는 감상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다. 윤상은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임이 틀림없다. 그 곡들을 오랜만에 다시 경탄하며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얼개가 잡히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읽어온 작가들의 작품들과 어제 들은 윤상의 앨범이 만나 뜻밖의 효과를 낸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단어들이 떠올랐다. 다음과 같다. 


기억, 회상, 불완전함, 한계, 모순, 우수, 갈등, 선택, 환란, 인간의 본성, 성장, 내부의 적, 외부의 도움, 구원, 회귀.


나는 이런 순간을 사랑한다. 우연히 숨겨진 비밀의 상자를 하나 찾아서 연 기분이랄까. 계시를 받은 기분이랄까.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파편과도 같은 사건들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때가 있다. 어제가 나에겐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아들을 픽업하기 전 그 단어들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무엇 하나 똑바로 하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벌이는 사람을 예전엔 좋게 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다르게 보인다. 나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게 된다. 어쩌면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만,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있고, 미리 판단한 뒤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과학자가 논문이나 내고 과학적인 업적이나 열심을 다할 것이지 과학과 상관없는 책이나 읽어대고 감상문이나 올리고 거기에다 책까지 쓰는 게 도대체 뭐냐고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동안 많이 받아왔다. 특히 나름 성공한 과학자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이다. 내가 비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리에 위치해 있지는 않지만, 나 역시 그동안 내 밥벌이인 과학에 열심이었다. 과학과 육아가 나에겐 읽고 쓰는 일보다 언제나 우선이었다. 페북에 비치지 않는 나의 8할은 과학자로서의 삶이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나는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한 경우가 된다. 결과 위주로 남을 판단하는 짓을 그들처럼 하지 않을 뿐.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읽고 쓰면서 무언가를 조금씩 만들어 간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나는 보물은 이런 데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도둑맞은 편지가 쓰레기통 안에 보란듯 있듯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것들은 누구나 맘만 먹고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면 따먹을 수 있는 열매로써, 특별한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신비한 장소가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에 흩어져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너무 계산에 빠르거나 약삭빠르지 않아서 감사한다. 그런 자들은 그런 일들이 안 될 줄 알고, 마치 티핑 포인트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미리 그만 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될 만한 일을 시작해야지 바보야, 하는 똘똘이 스머프들의 조롱이 들리는 듯하다. 과학자는 과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지, 혹은 과학자는 과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지, 하는 따위의 말에 이제는 귀를 닫기로 한다. 그런 식의 말은 시대착오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과학자 역시 과학만이 아닌 삶 전체로 보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자 이전에 인간으로 말이다. 과학적 업적은 그 다음이다. 열심히 해도 요즘엔 지위나 장소, 연구비 같은 수많은 변수들에 의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꼰대라고 나는 감히 불러드리겠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과정까지 함부로 판단하는 자들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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