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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잣대의 빈틈
“예쁘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라는 말은 여성의 미모에 대한 남성의 편견 내지는 오류를 잘 보여준다. 비율은 훨씬 적겠지만, 성을 바꿔도 이러한 오류는 반복되고 재현된다. 하지만 이 오류보다 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심각한 이유는 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이 오류를 오류라고 정의하길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오류는 이것이다. “아프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
아픈 사람을 약자라고 여기고 배려하는 행위는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배려에 가치판단의 이중잣대가 개입되면 곤란하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행하는 불의는 불의이지만, 아픈 사람이 행하는 불의는 불의로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아프잖아”라는 이유를 대면서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행한 불의를 희석시키거나 못본체 하거나 때론 정의로 뒤바꾸기도 한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아프면 불의를 행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프다는 이유가 가치판단의 기준 위에 존재한단 말인가? 아픈 건 특권인가?
나는 명백한 오류라고 본다. ‘예쁘면’ 혹은 ‘아프면’과 같은 특수한 조건은 결코 가치판단의 기준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공히 적용되는 기준을 피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는 존재할 수 없다. 정당방위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변명하려고 해봐야 헛수고다. 더 큰 오류와 모순을 낳을 뿐이다. 정당방위는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경우에 해당되며 여러 명의 제삼자가 판단했을 때에도 ‘어쩔 수 없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만이 가능한 얘기다.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아프면’이라는 조건 대신 ‘돈이 많으면’이라는 조건을 단다면, 아마 어지간한 사람들은 부조리와 함께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 서로 다른 두 조건이 가치판단에 있어선 다를 게 없다. 특히 그 아픈 사람이 실제로는 아픈 게 아니라면 문제는 커진다. 정당방위의 개념을 도입하려면 아프다는 말의 정의를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아프지 않아 보이는데 자기 스스로만 아프다고 한다면 그 조건은 충족되지 않는다. 혹시 누가 아는가. 그 사람이 일부러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불의를 행하는 것일지.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아프다는 핑계를 교묘하게 대는 건 아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걸 이용해 그동안 억눌렸던 무언가를 자기 맘대로 표출하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아프지만 약하지 않다, 너네보다 강하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즉 극심한 자기애에 똘똘 뭉친 사람일지 누가 아는가.
아픈 사람이 행하는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착한 사람 신드롬’ 때문일 것이다. 이 신드롬은 예의 바르고 착하게 보여야 한다는, 그래야 자기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역시나 이기적인 심리의 연장선에 있다. 알고 보면, 불의를 행한 아픈 사람을 배려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교묘한 빈틈, 뭇 사람들의 애매한 배려를 역이용하여 자신은 마치 불의를 어느 정도 행해도 괜찮은 것처럼, 다시 말해 자기에겐 법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보단 느슨한 것처럼 여기고 그렇게 행동하는 (그것도 당당하게)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인간 본성의 역겨움을 마주하는 것 같아 몸소리가 처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먼저 그 사람의 불의를 허용하자고 나서는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헛구역질이 난다. 서로에겐 아마도 윈윈 게임일 것이다. 아픈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를 도와준 친구(?)는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고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말 잘 논다. 파멸을 위한 완벽한 한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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