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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고향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1. 26. 23:41



고향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까지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 후론 포항에서 10년을, 의정부와 연천에서 2년 2개월을, 인천에서 2년을, 서울에서 1년을, 그리고 미국에서 11년을 살았다. 부모님이 퇴직을 하신 뒤 영천으로 옮기신 것도 내가 미국 가기 수년 전이었으니, 부산은 사실상 내가 반드시 찾을 이유가 사라져 버린 도시가 된 셈이다.


학회 참석차 부산을 찾았다. 어색했다. 처음 와보는 도시 같았다. 정말 내 고향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 과연 고향은 어디인가, 하고.

고향이 내가 태어난 곳을 말한다면, 부산이 고향이다. 고향이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을 말한다 해도 여전히 부산이 내 고향이다. 그러나 향수라든지, 옛 기억이라든지 하는 각인된 과거를 말한다면, 부산은 나에게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을 기억하는 건 부산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부모님과 친구들이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삭제된 등본상의 기록만을 가지고 고향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폭력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기억만으로 고향을 정의하는 것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다. 짧은 기간 강렬한 기억을 남긴 군생활을 했던 연천을 내 고향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에 계신 곳을 고향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것도 아닐 것이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영천을 내 고향이라 할 수는 없다.

질문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 고향은 어디인가. 그나마 십여 년을 살았던 포항이나 미국을 고향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짧게 살았지만 아들이 태어나고 잠시 자란 도시 인천이나 서울을 고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아니다. 모두 고향이 아니다. 내가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나뿐일까 싶다. 요즘엔 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거기서 뼈를 묻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고향을 어떤 제한된 시공간에 묶어 두어야만 하는가.

나그네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네에게도 고향이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시간으로는 바로 지금, 공간으로는 바로 여기. 그렇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나그네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인간이지 않을까. 나는, 잠시라도 좋으니, 겸허한 마음으로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고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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