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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단순함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9. 17. 13:39

단순함

단순함은 종종 하나의 미덕으로 추앙받는다. 특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고민과 갈등 가운데 갈팡지팡 하고 있거나 고민과 갈등 자체를 혐오하거나 정면승부를 피하고 언제나 도망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그렇다. 단순함이 그들에겐 구원이자 가장 쉽고 편한 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 답이 그들에게 진정 답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들의 성장과 성숙을 놓치게 만들고 생각할 힘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며 옹졸하고 편협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크루테이프가 가장 칭찬할 만한 환자의 부류가 아닐까 싶다. 그 답을 얻는 순간은 어쩌면 한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훈련을 거치지 않은 채 미성숙하고 나약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변모하는 변곡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인생의 후퇴다. 꼰대가 되는 최단코스이다.

단순함이 미덕이 되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단순함은 반드시 복잡함이라는 연단을 거친 산물이어야 한다는 것. 순수함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다름 혹은 다양성을 경험하지 않은 순수함은 나이브함 혹은 순진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넘어져보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다고나 할까. 고민과 갈등과 의심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지 않은 순진한 신앙은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채 자기애로 수렴되며 주머니 속 날카로운 송곳이 된다. 불행한 점은 그 송곳은 나이가 들며 점점 자라고 그에 따라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타자를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이는 흉기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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