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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감사하기, 누리기, 나누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 26. 12:42

감사하기, 누리기, 나누기

아들과 나는 다른 버스를 탄다. 십여 분 기다리다가 아들을 먼저 버스를 태워 보낸 후 나는 오늘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십여 분을 기다리다가 환승했다. 영하 두 자리 숫자에서 25분 넘게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살고 있는가, 어느새 풍족함이 내 허리에 둘러진 뱃살로 자리매김한 건 아닌가, 기름진 돼지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에 답을 해보려 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이 났다. 요컨대 먼저 감사하기, 그리고 누리기, 그리고 나누기, 라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감사하기’가 되지 않으면 두 번째 ‘누리기’는 인생의 목적이 되기 쉽다. ‘누리기’는 때론 ‘자수성가’의 증거로, 때론 ‘자기 과시’로, 또 때론 거짓 겸손을 입은 ‘자기 비하’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세 가지는 서로 다른 표현형을 띠게 되지만,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천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감사는 나의 세상, 나에 의한 세상, 나를 위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라고 나는 믿는다.

‘감사하기’가 되어도 ‘누리기’가 되지 않으면 ‘나누기’로 이어지기 힘들다. 이성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성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 중 하나일 뿐 인간의 본성을 대변해주진 않는다. 인간은 이성적일 수 있는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삶은 이성적으로 살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맛보지 않고 모두 남을 위해 퍼주는 사람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맛을 먼저 보되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고 그 이상은 나눌 줄 아는 삶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물론 사람마다 ‘적당한 선’이 다를 것이다. 그 선은 강제할 수도 없고 규제할 수도 없다. 그저 자발적으로 지킬 뿐이다. 바로 이 지점은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자기는 전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맹목적인 이념에 갇힌 채 남에게 퍼주는 일을 우상으로 만든 사람이나, 모든 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며 남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로 철이 덜 든 사람인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철이 점점 더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첫 번째, 감사하기. 두 번째, 누리기. 세 번째, 나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자 애쓰는 내가 앞으로도 놓치지 않고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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