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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의 정체
경미해서 다행이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기억.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뇌경색으로 잠시 졸도한 적이 있었다. 마침 곁에 있던 아내의 도움으로 그 순간을 무사하게 지나칠 수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4시간 두통과 편두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생각한 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머릿속은 무엇을 말하라고 하는데 내 입은 그 명령을 거역하고 엉뚱한 단어들을 더듬더듬 내뱉고 있었다. 답답했다. 입을 다물기로 했다.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 게 더 정확했다. 졸도하기 직전의 그 몇십 분.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못하는 언어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이게 끝인가 싶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내가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거실로 들어가 카펫 바닥에 엄청난 양의 토사물을 쏟아내며 잠시 정신을 잃었다. 잠시 나의 뇌혈관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그 순간 제거되어 다시 정상적인 혈류가 회복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죽음의 문턱에서 급 우회했다는 감사함과 함께 언어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다. 이것이 내가 늘 나의 글쓰기는 팔 할이 절박함이라고 말해 온 중추적인 이유다.
원래 내게 있던 건데, 나는 잠시 잃어버렸고, 그것을 되찾은 감격은 어떻게 해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 이후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상실과 결핍이 시작이었다. 나는 빚진 자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충만으로 나아가고 있다. 읽고 쓰는 일. 언어로 나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절박함이 나의 읽고 씀의 기본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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